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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서평] 논어

by Oh 선생 2020. 2. 11.

 

#0. 요새 블로그 글 쓰는게 영 뜸하다. 이 블로그의 성격이 내 교육활동이나 이런저런 생각, 공부를 기록해두는 곳임을 생각해보면, 글이 없다는 건 내게 의미있는 교육활동이나 사색의 시간이 적다는 걸 뜻한다. 핑계를 대자면 고3담임, 육아를 비롯해 이런저런 것들이 있지만 결국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가 제일 큰 이유겠다. 

#1. 그래서 지난 2학기부터는 독서라도 일단 많이 해두자 생각이 들었다. 전공책은 요샌 영 손이 안가고, 뭘 읽을까 고민하다보니 대학원 시절 존경하던 교수님이 가끔 얘기하시던 논어가 생각나더라. 훌륭한 사람들은 다들 동양철학을 한 번쯤은 파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논어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2. 특별히 논리적인 구조를 가진 게 아니라, 그냥 공자님 말씀 모아둔 게 논어라서 목차라는게 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래도 일단은 목차다. 

목차

옮긴이의 말
한 인간의 체취가 꾸밈없이 묻어나는 유교 성전, 「논어」

제1편 학이(學而)
제2편 위정(爲政)
제3편 팔일(八佾)
제4편 리인(里仁)
제5편 공야장(公冶長)
제6편 옹야(雍也)
제7편 술이(述而)
제8편 태백(泰伯)
제9편 자한(子罕)
제10편 향당(鄕黨)
제11편 선진(先進)
제12편 안연(顔淵)
제13편 자로(子路)
제14편 헌문(憲問)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제16편 계씨(季氏)
제17편 양화(陽貨)
제18편 미자(微子)
제19편 자장(子張)
제20편 요왈(堯曰)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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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래는 읽으면서 감명깊게 읽은 구절 적어둔 것. 

학이

p. 29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학생 때도 이런 말을 모르지는 않았는데, 나이가 30보다 40에 가까워진 시점에서 글을 다시 읽으니 묘한 울림이 있다.

참으로 그러하다. 

p. 31 “나는 날마다 다음 세 가지 점에 대해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은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p. 37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위정

p. 39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또한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

내가 뭐 누굴 다스리는 입장은 아니지만, 학생들 대하는 입장에서 새삼 느낌이 좋았던 구절이다.

어린애들을 대할 때 힘들더라도 옳은 방향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겠다. 

p. 43 “군자는 그릇처럼 한 가지 기능에만 한정된 사람이 아니다.”
p. 43 “군자란 말보다 앞서 행동을 하고, 그 다음에 그에 따라 말을 한다.”
p. 44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리인

p. 65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입니다.”
각주: 충은 진실된 마음을 말하고, 서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여 남의 처지를 이해하며 대하는 것이다. 주희는 진심으로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이고,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이 바라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서라고 하였다.

논어를 보면서 새삼 놀란게, 근본적인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거다. 중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공자는 이런게 아니지 않았나 싶기도 하던데... 역시 원전을 읽고 이해하는 게 제일 낫다. 

옹야

p. 84 염구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가서 그만두게 되는 것인데, 지금 너는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 있구나.”
p. 86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다운 것이다.” (문질빈빈)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종종 말씀하시던 부분이다. 문질빈빈. 방법론 수업을 들을 때에는 지나치게 문적인 관점, 기존 이론의 관점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상, 사태의 본질을 맨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라는 말로 이해했었다. 물론 본질만 추구하는 것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론의 눈을 빌리되 주객이 전도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 이론과 사태를 비교해가며 참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라는 말씀이었다.

요샌 이 말이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사실 나는 디테일이나 형식적인 것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얽매이지 않는다기보다, 등한시한다고 보는 게 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본질이, 알맹이가, 하려는 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가면 갈 수록 디테일이, 포장과 형식이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역시 둘은 모두 고려해야 할 대상인 갑다. 

p. 90 “인이란 것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다.”

 

태백

p. 107 “그 직위에 있지 않다면, 그 직위에서 담당해야 할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여긴 생각을 좀 잘해야 하는데... 아랫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에도 윗사람의 관점에서 일을 생각해야 큰 갈등없이 일을 할 수 있다. 지휘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기서 꾀하지 말라는 건 도가 지나치게 분수를 넘지는 말라는 것 같다. 

 

자한

p. 118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안연

p. 139 중궁이 인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집 문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대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듯이 하며,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이가 없고, 집안에서도 원망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p. 141 극자성이 말하였다. “군자는 본래의 바탕만 갖추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겉모습이나 형식은 꾸며서 무엇하겠습니까?”
자공이 말하였다. “안타깝구려! 군자에 대해 선생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보니,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선생의 혀를 따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무늬도 바탕만큼 중요하고, 바탕도 무늬만큼 중요합니다. 호랑이와 표범의 털 없는 가죽은 개와 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까 문질빈빈과 비슷한 맥락이다. 호랑이나 개나 털 깎으면 다 똑같다. 되게 멋진 말이다. 공자맹자 시대에도 디스는 이렇게 해야 했었나 보다. 

p. 144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은 충분히 발휘되도록 해주고 남의 나쁜 점은 발휘되지 않도록 해 주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자로

p. 155 “빨리 성과를 보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라. 빨리 성과를 보려 하면 제대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p. 157 “군자는 사람들과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사람들과 화합하지는 않는다.”

 

헌문

p. 169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타인의 인정을 무시할 순 없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자기 수양에 있음을 항상 명심...

 

위령공

p. 17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워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

 

p. 183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각주 충이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비교적 소극적 자세라면, 서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먼저 해주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이다.)

 

계씨

p. 192 “군자를 모실 때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잘못이 있다.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고 한다. 말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을 속마음을 숨긴다고 한다. 얼굴빛을 살펴보지도 않고 말하는 것을 눈뜬장님이라고 한다.”

 

양화

p. 199 “유야, 너는 여섯 가지 덕목과 그것들을 가리는 여섯 가지 폐단에 대해 들어보았느냐?”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앉거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인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움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분수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신의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곧은 것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박절하게 되는 것이다. 용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는 것이다. 굳센 것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좌충우돌하게 되는 것이다.”

 

p. 203 재아가 여쭈었다. “삼 년상은 기간이 너무 깁니다. ... (중략) ... 일년이면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편안합니다.”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여라. 대체로 군자가 상을 치를 때는,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없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집에 있어도 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여라.”
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재아)는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 대체로 삼 년상은 천하에 공통된 상례이다. 여도 그 부모에게서 삼 년 동안 사랑을 받았겠지?”

재미진 부분이다. 삼년상이 길다고 징징거리니까 공자가 '너도 3년은 부모가 키웠다'라고 말한다. 육아책을 보면 보통 애들을 3년은 부모가 끼고 있으라고 말하는데, 그 얘기가 이미 공자시절부터 있던 말이었구나 싶더라. 

자장

p. 213 자하가 말하였다. “날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달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p. 214 자하가 말하였다.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융통성을 두어도 괜찮다.”

 

사실 잘 보면 동양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수십번은 들어봤음 직한 얘기들이다. 그래서 텍스트 자체가 새롭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새롭게 다가온다면, 책이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이 변해서 그런 것일 게다. 그냥 살다보면 쉬이 까먹을만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특히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자고 항상 생각하는데, 논어에서 하는 얘기들은 그 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에 깊게 닿아 있어 참 맘에 들었다.

(예상치 못한 단점이라면 논어를 읽고나서부터 애들한테도 공부는 사람으로써 그냥 하는거지, 대학 가려고 하는 그런게 아니다...라고 말을 종종 했는데, 이게 어째 꼰대 잔소리 같다는 느낌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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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사막한가운데 2020.03.23 18:02

    배우기를 멀리하는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ㅎㅎ
    육아 부분이 재미지네요 ㅋㅋㅋ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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