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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육

수학사와 수리철학 겉핧기

by Oh 선생 2019. 10. 22.

* 본 글은 학교 방과후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아쉬운 점이 많은 글인데 그걸 다 채우면 분량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 용두사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써놓고 버리기 아까워 블로그에 걸어둡니다. 

** 글의 골격은 하워드 이브스의 수학사에서 가져왔습니다. 

*** 글의 목적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좋게 쓰는 데 있었습니다. 혹시 오해할 수 있거나, 제가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읽어보니 종종 오타가 눈에 띕니다. 양해바랍니다. 


0. 들어가며

 

수리철학을 다루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고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수리철학의 주요 문제들이 고등학생들이 다루는 윤리나 실천철학 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수리철학에서는 주로 수학은 어떤 종류의 지식이며(수학의 존재론), 그것을 어떻게 알아갈 수 있는가(인식론) 등을 다룹니다. 존재론적 접근에서는 수학의 본질이 논리냐, 기호체계냐, 아니면 직관으로 구성되는 무언가냐 등을 다투고, 인식론적 접근에서는 수학을 안다는 게 인간의 공통된 인식기관을 통해 알게 되는거냐, 사회적 구성에 참여함으로써 알게 되는거냐 등을 다툽니다. 언뜻 봐도 여러분이 고민하는 주제와는 다르잖아요? 고등학생의 철학 공부는 삶과 밀접하게 관계되어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서 이걸 있는 그대로 풀어주기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고민은 수학과 수학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수리철학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칸트가 위대한 이유는 흄이 야기한 주체의 위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했기 때문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수리철학이 왜 중요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이딴 얘기를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수학이 겪어왔던 위기와, 그 위기가 어째서 위기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알잖아요, 수학. 어려워요.

이러한 두 가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 글은 수학이 겪었던 세 번의 위기를 간략하게 훑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리철학을 소개합니다. 수리철학만 알면 되는데 왜 앞선 두 번의 위기를 봐야하는가? 하고 의문이 생길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선 수리철학을 19세기 이후에 두각된 수학기초론에 해당하는 학문의 분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수학이라는 인간 활동 속에서 나타나는 사고방식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랐다고 변명하겠습니다. 후에 드러나겠지만, 수학이라는 게 그렇게 이성만이 존재하는 학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향상심을 가진 이들이 해온 뜨거운 학문에 더 가까워요. 시작하겠습니다.

 

1. 수학의 첫 번째 위기

첫 번째 위기는 기원전 5세기에 일어났는데, ... 그 위기는 같은 종류의 모든 기하학적 양들이 서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가령 정사각형의 변과 대각선은 공통의 측정단위가 없다는 예기하지 못한 발견에 의하여 갑자기 닥쳐왔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모든 비슷한 양들은 비례한다는 강력한 직관적 믿음 위에서 양()을 개발했기 때문에 비슷한 양들이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발견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 그러나 이 위기는 마침내 기원전 370년경 에우독소스에 의하여 해결되었는데, 양과 비례에 관한 개정된 이론은 전 역사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수학적 걸작 중의 하나이다.

출처: Howard Eves(1995), pp. 556-557.

  기원전 5세기, 수학계를 주름잡고 있던 피타고라스학파는 만물의 근원이 정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수가 있으면 그로부터 유리수를 유추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중1때 다들 해봤을 거에요. 간단한 작도를 통해 생각해보겠습니다.

(한글에서 쓴 원고는 티스토리로 옮기기가 영 어려워서, 수식이 들어간 부분은 캡처해서 붙였습니다.)

* 오타: 반직선 AB가 아니라 그냥 반직선이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직선 위의 모든 점들을 유리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말은, 어떠한 두 길이를 가져오더라도 이 두 수를 잴 수 있는 공통의 측정단위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피타고라스 학파의 많은 수학연구는 이렇게 두 양을 잴 수 있는 공통의 측정단위가 존재한다는 직관적인 가정 위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이러한 믿음은 무리수, 루트2의 발견으로 인해 무너지게 됩니다. 단순히 무리수가 존재한다가 놀라운 게 아니라, 이게 곧 두 양을 재는 공통의 측정단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함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보통 피타고라스 학파가 무리수를 발견하면서 자신들의 철학과 다른 수가 발견되어 그 존재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를 죽였네 마네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 들여다보면 무리수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기보다, 기존에 가정했던 공통의 측정단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껏 쌓아올렸던 수학 이론이 무너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속상했던 거라고 보는게 맞지 싶습니다. 이후 피타고라스 학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는 사실 의견이 분분합니다. 무리수를 발견한 이를 죽여서 비밀에 부쳤다는 썰도 있고, 무리수를 수로 이해하기 어려운 거지 그림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게 아니니까 기하를 중심으로 이후의 이론 전개를 했다는 썰도 있습니다(나는 후자를 믿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문제는 결국 피타고라스 학파의 먼 제자뻘인 에우독소스에 의해 해결됩니다.

이에 에우독소스는 아예 비례라는 개념 자체를 다르게 성립해버립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두 길이를 공통의 측정단위로 재서 그게 몇 개나 나오는지를 비례의 개념으로 설정했다면, 에우독소스는 다음과 같이 비례를 정의합니다.

이 비례에 대한 정의를 통해 위에서 나온 명제를 다시 증명해봅시다.

 

 

2. 수학의 두 번째 위기

수학의 기초에 관한 두 번째 위기는 17세기 후반에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발견한 후 나타났다. 이 두 사람의 계승자들이 이 새로운 도구의 응용 가능성과 위력에 도취된 나머지 그것이 세워진 기초가 튼튼한가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고, ... 해석학의 구조가 모래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졌고, 마침내 19세기 초에 코시가 모호한 무한소법을 정확한 극한법으로 바꿈으로써 위기를 해결하는 첫 발을 내디뎠다. 뒤이은 바이어슈트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의한, 소위 해석학의 산술화로 수학의 기초에 관한 두 번째 위기는 극복되고 수학의 전체 구조가 회복되어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한 기초 위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출처: Howard Eves(1995), p. 557.

 

 흔히 아는 것처럼, 미적분학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에우독소스나 아르키메데스는 실진법을 이용해 곡선으로 둘러싸인 영역의 넓이를 구하려 시도했고, 중세시대의 카발리에리는 카발리에리의 원리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뿔의 부피가 기둥의 1/3임을 납득하게 만들었습니다. 페르마는 접선에 관련하여 현대적인 미분의 착상을 떠올렸고, 배로는 미분법과 적분법이 역연산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온갖 도형의 길이와 부피, 접선이 미적분을 통해 계산되었습니다.

 

말이 좀 어렵죠? 더 자세한 건 직접 자료를 찾아보길 권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건 저렇게 깐깐하고 엄밀한 조건을 통해, 그리고 집합을 통한 엄밀한 정의를 통해 실수 체계를 확립하려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탄탄한 기초에 근거해서 수학 이론이 다시 쌓아올려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잠깐,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를 연달아 설명하려다보니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졌습니다. 수학의 엄밀화가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집합론이 있었다고 했죠? 그 집합론을 재정립한 칸토어의 업적에 대해 몇 가지 알아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칸토어가 집합론을 정립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가진 무한에 대한 개념은 가무한의 개념에 더 가까웠습니다. 가무한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개념입니다. ‘~에 점점 가까워지는’, ‘~점점 커지는등의 표현을 사용할 때 우리는 이미 결정되지 않은, 변화하는 역동적 형태의 무한, 가무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죠. 더 쉬운 예로 0.999...가 있겠습니다. 이걸 1로 받아들이는 친구는 이제 실무한을 이해한거고, 아직 0.999... 1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친구는 아직 실무한을 받아들이지 못한 거지요. 그런데 가무한을 받아들이면, 무한은 하나의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다룰 수가 없게 됩니다. 이걸 뭔가 다룰 만한 대상으로 바꿔놔야 수학적으로 무한을 다룰 수 있게 되죠. 칸토어가 한 일은 무한이 그냥 막연한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임을 말한 겁니다. 칸토어의 업적 중 하나인 농도 개념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집합의 농도는 무한 사이에도 서로 다른 급(?)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3. 수학의 세 번째 위기

수학의 기초에 관한 세 번째 위기는 1897년에 충격적일 만큼 갑자기 출현하였는데, 3 사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거기에 관한 모든 것들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위기는 칸토어의 일반적인 집합론의 기초에 관한 역설 또는 모순이 발견되면서 발생하였다. 수학의 많은 부분을 집합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집합론에서 역설이 출현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수학의 전반적인 기본 구조의 타당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수학의 기초와 관련하여 주요한 세 사조 소위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가 탄생하였다.

출처: Howard Eves(1995), pp. 557-560.

 

앞서 우리는 미적분의 발전에 어떤 위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극복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바이어슈트라스 등이 선택한 방법은 집합론에 근거하여 수학을 단단한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확보한 기반-집합론-조차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19세기 후반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역설 중 대표적인 것이 러셀의 역설입니다. 러셀의 역설은 대충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이발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자기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모든 사람들의 수염을 전부 깎아 주겠소. 다만 스스로 깎는사람은 깎아 주지 않겠소.”

그러면 이 이발사의 수염은 누가 깎아야 할까요? 만약 다른 사람이 이발사의 수염을 깎아준다면 이 이발사는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선언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수염을 깎아야 합니다. 만약 스스로 수염을 깎는다면 이 이발사는 수염을 스스로 깎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선언에 따라 자신의 수염을 깎으면 안됩니다. 골때리죠? 비슷한 버전으로 내가 지금 말하는 명제는 거짓이다라던가, 크레타 철학자가 말한 크레타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만 한다가 있습니다.

이게 어찌보면 농담 같은 얘긴데, 당대에 끼친 영향은 어마무시했습니다. 한창 집합론을 근거로 해서 수학의 기초를 탄탄히 세우려가던 시기에, 사실은 그 집합론조차 문제가 있지롱! 하고 뒤통수를 때린 거거든요. 당시에 프레게라는 학자는 수학을 논리학의 근거 위에 세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러셀에게서 이 역설을 들은 뒤 12년간 집필한 책의 마지막 부분에 과학자가 논문을 완성하자마자 기초가 무너지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논문이 거의 인쇄될 때쯤 러셀 씨가 보낸 한 통의 편지에 의하여 이러한 처지에 빠졌다.” 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큰 위기는 철학의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지요. 집합론의 수준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수학자들의 관심은 이제 수학의 기초가 도대체 무엇이냐? 수학의 본질은 뭐냐? 어떻게 생각해야 수학을 탄탄한 기초 위에서 재건할 수 있느냐? 라는 고민에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야 비로소 우리의 주제인 수리철학이 나타납니다.

현대의 수리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를 필두로 하는 논리주의, 브로워가 이끄는 직관주의, 그리고 힐베르트가 주장하는 형식주의가 그거죠. 지금부터 각 학파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어떤 식으로 수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시도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논리주의

사실 논리주의는 러셀의 역설 이전부터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집합론이 수학의 기초를 단단하게 잡아가자, 그렇다면 집합론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논리학을 통해 수학을 재구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거죠. 이런 생각에 따라 논리주의는 수학을 논리학의 한 분야로 포섭하고자 합니다. , 모든 수학을 논리학에 근거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수학을 논리학의 하위 분야로 놓고자 계획한 거죠. 당시 논리주의의 거두였던 프레게는 당대의 수학이 자연수로부터 발전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논리학을 통해 자연수를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수학 전체를 논리학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2) 직관주의

브라우어를 필두로 하는 직관주의는 일단 직관적으로 주어지는 자연수의 존재는 인정을 합니다. 그리고 자연수로부터 출발하여 유한한 구성 방법에 의해 모든 수학적 개념을 재구성하고자 하지요. 논리주의가 자신들의 출발점을 논리학에 두었다면, 직관주의는 직관이 보장하는 자연수에 둔 겁니다. 이들은 오로지 유한번의 조작을 통해 구성되는 개념, 증명 등만 수학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경우 앞서 다뤘던 러셀의 역설은 손쉽게 회피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관주의자에게 집합이란 이미 만들어진 모임이 아니라, 집합의 원소를 하나씩 만들 수 있는 규칙으로 간주되거든요. 그러니까 이들에게 모든 집합들의 집합같은 집합은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는 겁니다. 러셀의 역설을 회피했으니 직관주의는 수학을 더욱 단단한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3) 형식주의

직관주의를 바라보는 수학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봅시다. 직관주의는 오로지 직관에만 의존하여 유한 번의 조작을 통해서만 수학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야만 무한집합으로부터 야기된 수학의 모순을 배제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걸 해내려면 지금까지 알려진 수학의 많은 부분을 버려야만 해요. 힐베르트는 이걸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식주의라는 새로운 기획을 통해 기존의 수학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수학 체계의 무모순성을 증명해내려는 시도를 합니다.

힐베르트의 대략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힐베르트는 수학이 그 자체적으로 모순이 없음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요. 무슨 말이냐면, 하나의 수학적 체계 내에서는 그것이 무모순성을 가짐을 스스로 보일 수는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힐베르트는 한 차원 더 올라가서 수학을 조망하고자 합니다. 이 지점에서 수학의 형식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수학적 문장에서, 그것이 가진 고유한 의미를 제거하고, 오로지 형식만을 남겨두겠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형식이 이루어지는 규칙에 관심을 갖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힐베르트는 수학이 특정한 규칙에 의해 구성된 기호의 체계임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기호가 뭘 의미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기호와 그 기호를 다루는 규칙에 관심을 두는 거죠. 그래서 그 기호를 다루는 규칙 속에서 모순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수학에도 모순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해요.

그래서 우선 힐베르트가 한 일은 수학을 형식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건 쉽게 말해 기존의 수학에 남아있는 우리의 직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기호와 기호 사이의 약속, 공리에 대한 체계로 수학을 바꾸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유클리드 기하에서는 임의의 두 점을 잇는 직선이 존재함을 공리로 받아들입니다. 당연하죠? 왜 당연할까요? 우리는 두 점이 있다면 그걸 이을 수 있다는 걸 직관을 통해’ ‘의심없이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힐베르트에게 이건 그렇게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나 봐요. 두 점을 잇는 직선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직관이라는, 수학 바깥의 무언가에 의존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에 힐베르트는 임의의 두 점에 대해, 두 점을 잇는 직선이 존재한다는 공리를 도입합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힐베르트는 기존의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암암리에 직관적으로 당연시 되던 여러 가정들을 공리로 명백하게 드러냅니다(결합, 순서, 합동, 평행, 연속공리군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두 점을 잇는 직선을 생각할 때 그걸 굳이 직선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무방하게 됩니다. ‘임의의 두 돼지에 대해, 두 돼지를 잇는 소고기가 존재한다라고 말해도 문제가 없게 된 거에요. 왜냐하면 이건 공리가 보장해주는 사실이니까요. 실제로 힐베르트는 점, , 평면 대신 탁자, 의자, 맥주잔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이해해야 할 건 의미를 벗어나려 노력했다는 거에요. 실제로 이 맥락에선 돼지나 소고기나 별 의미 없는 말들이잖아요. 이러한 형식화를 통해 힐베르트가 수학을 단순히 기호와 규칙의 체계로 만들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수학이란 건 규칙에 따라 기호를 조작하는 일종의 기호 게임이 된 거죠. 중요한건 기호들이 어떤 게임의 규칙에 의해서 움직이느냐, 그 게임에서 모순이 생기지 않느냐는 게 중요해진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클리드 기하가 맞냐, 비유클리드 기하가 맞냐를 따질 필요도 없어진 겁니다. 어차피 둘은 다른 공리체계를 갖춘 다른 기하학 체계니까요. 중요한건 유클리드 기하건 비유클리드 기하건 모순이 있냐 없냐만 중요해 진거죠.

4)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수학의 형식화를 통해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쌓으려는 힐베르트의 시도를 보통 힐베르트 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힐베르트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의 목표를 가집니다. 첫째는 수학이 무모순적인 체계임을 보이는 것이고, 둘째는 수학이 완전성을 가짐을 보이는 것입니다. 무모순은 앞에서 많이 설명했으니 완전성만 설명하겠습니다. 완전성이란 수학의 어떤 명제라도 반드시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해해선 곤란합니다. 명제는 반드시 참이든 거짓이든 둘 중 하나만 가능합니다. 완전성은 우리가 유한번의 절차를 통해 그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드러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겁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기껏 학문의 기초를 쌓아놨더니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는 명제가 있어선 영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힐베르트는 수학에 무모순성과 완전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나타난 괴델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이게 그 유명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입니다.

1정리. 페아노 공리계를 포함하는 어떤 공리계도 무모순인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 즉 자연수 체계를 포함하는 어떤 체계가 무모순이라면, 그 체계에서는 참이면서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  

2정리. 페아노 공리계가 포함된 어떠한 공리계가 무모순일 경우, 그 공리계로부터 그 공리계 자신의 무모순성을 도출할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나요? 1정리를 다시 말하면 어떤 수학체계가 무모순이라면, 그 수학체계 안의 규칙을 따라 만들어진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학체계 안에서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있다는 겁니다. 힐베르트 입장에선 명치를 맞은 거죠. 수학은 무모순이고 완전해야 하는데 완전할 수가 없다잖아요. 힐베르트는 그렇다면 수학은 무모순성을 가진다는 것만이라도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괴델이 또 제2정리로 명치를 때려요. 만약 어떤 수학체계가 무모순성을 가진다면, 그걸 보이는 건 그 수학체계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또 다른 범주의 수학체계가 필요하다는 거죠. 결국 하나의 수학체계는 완전할 수도, 무모순성을 스스로 보일 수도 없다는 겁니다.

 

4. 나가며

여기까지의 논의를 통해 간략히 수학의 위기와 수리철학의 등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수리철학은 사실 무척 복잡하고 난해한 얘긴데, 내가 그걸 충분히 다룰 역량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통 널리 알려진 수준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글은 하워드 이브스의 수학사의 해당 파트를 기본 골격으로 삼아 작성되었습니다.

다뤄보고 싶었으나 내 역량을 넘어갈 것 같아서 다루지 않은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가령 칸트가 가진 수학에 대한 관점(선험적 종합판단)과 수리철학에서 드러난 수학에 대한 생각, 수학사에 대한 패러다임 이론이나 칼 포퍼의 반증이론의 적용, 라카토스의 수학적 발견의 논리에서 나타난 오류주의적 관점 등 말입니다. 무한과 신을 결부시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당대 수학자들의 관점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책과 논문을 찾아보길 권합니다.

혹시 글을 읽고 자신의 삶에 한 부분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교훈을 찾을 수 있었다면 글쓴이는 충분히 만족할 것 같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느라 고생했습니다

 

** 애들 주자니 영 찜찜해서 덧붙이는 글 

글을 읽고 나니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려던 노력들이 다 무산되었는데 결국 남은 게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칸트도 이후 철학자들에게 종종 비판받았고, 심지어 그가 가정하던 절대적 시공간 개념이 비유클리드 기하로 인해 무의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 철학은 여러 번 반복되어 해석되며 아직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잖아요. 칸트를 믿는 이는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겠죠. 신념과 선택의 문제라고 봐요.

수리철학도 그 정도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논의한 수리철학들이 수학의 기초를 완전한 체계로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각자가 가진 수리철학에 따라 수학을 대하는 방법과 태도가 달라질 수 있잖아요. 가령 직관주의자는 여전히 구성적인 증명을 선호할 것이고, 형식주의자는 어떤 공리를 바꿔서 새로운 수학을 만들어볼까 고민할 겁니다. 그러나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건 소위 수학자 세계라고 불리는 곳에서 서로가 의사소통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가 수리철학을 배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뭘 더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친구를 위해 글을 덧붙입니다. 앞서 논한 세 가지 주류는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 절대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학은 절대적 진리로서 존재하며, 그러니 당연히 그 기초도 절대적 진리로서 타당하게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거죠.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가 그토록 수학기초론을 탄탄히 세우고자 했던 동기는 이러한 철학적 배경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시도 외에도 수학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철학적 흐름이 있습니다. 절대주의적 접근이 거의 실패했으니, 당연히 반대 입장에 서는 철학이 나올 만도 합니다. 가령 라카토스의 준경험주의가 그렇습니다. 준경험주의도 설명하려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면 수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증명과 반박에 의해 성장하는 준경험적 과학이라는 거에요. 이에 따르면 수학적 지식은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그리고 증명은 이 추측을 여러 개의 부분추측으로 나누어 분해하는 과정인거죠. 그리고 수학적 지식은 이렇게 분해된 부분추측에 대해 반박과 개선을 반복하며 점점 더 나아진다는 겁니다. 수학적 지식이 오류 없이 뿅 나오는 게 아니라, 추측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며 발전해간다는 거죠. 이때 반례는 기존의 추측을 개선하게 만드는 좋은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반례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라카토스는 항복, 괴물배제법, 예외배제법, 괴물조정법, 보조정리합체법 등을 설명했는데 거기까지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라카토스와 오일러 공식(v-e+f=2)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에요. 준경험주의는 수학교육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임용고사에 자주 나와요...).

 

*** 생각할 거리들

1.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그것이 갖는 자유로움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학은 자유로움과는 별 관계없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앞서 실수 체계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봤잖아요. 형식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수학은 결국 그런 공리들의 모임입니다. 온갖 약속 위에서 이루어진 수학을 어떻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2.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받은 수학 수업은 어떠한 수리철학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보이나요? , 각 수리철학의 관점에서 수학 수업을 만든다면 어떤 형태의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3. 수학교육을 통해 민주시민 교육을 비롯한 여러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수학의 어떤 점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까요? 그러기 위해 수학은 어떻게 가르쳐져야 할까요?

 

그밖에,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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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학생 대상으로 수업을 했다. 수업이라기보단 강연에 가까웠지만...

시청각실에서. 

학생사진도 재미진게 좀 있는데 애들 얼굴 지우기가 귀찮아서 생략. 

* 수리철학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수학사랑 엮어서 가기로 한 생각은 다시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 수리철학 자체를 설명할 때 디테일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디테일하게 가면 너무 어렵고, 쉽게 가면 이해가 안되고..딜레마다. 

* 괴델 이후의 이런저런 사조들... 구조주의, 준경험주의 등을 좀 더 정리해서 전달해줘도 좋았을 것 같은데 거긴 또 너무 전문영역일 것 같아서 생략했다. 철학을 알고, 자기 상황에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면 굳이 소화하지도 못할 철학을 전달하는 것보다 일단 몇 가지라도 알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더 나을 듯 해서...

* 수업 후 질문 시간에는 별 질문이 나오지 않았는데, '루트2가 무리수임을 귀류법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증명하나요?'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구성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잘 모르겠어서... 아래는 관련 링크다. 

https://math.stackexchange.com/questions/20567/irrationality-proofs-not-by-contradiction

 

Irrationality proofs not by contradiction

Per now, I have basically come upon proofs of the irrationality of $\sqrt{2}$ (and so on) and the proof of the irrationality of $e$. However, both proofs were by contradiction. When thinking about...

math.stackexchange.com

여기에도 의견이 분분하니 읽어보면 좋을 것 같고, 

https://en.wikipedia.org/wiki/Square_root_of_2#Constructive_proof

 

Square root of 2 - Wikipedia

"Pythagoras's constant" redirects here. It is not to be confused with Pythagoras number. The square root of 2, or the (1/2)th power of 2, written in mathematics as √2 or 2​1⁄2, is the positive algebraic number that, when multiplied by itself, gives the num

en.wikipedia.org

이건 비교적 납득할만한 증명이니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과연 학생이 여기까지 찾아올까는 의문이지만...)

제일 좋은건 스스로 일단 방법을 찾아보는 일이겠다. 

* 아이디어: 수학과 선생님들끼리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런 주제로 연강을 열면 어떨까 싶다. 참가자는 기록했다가 나중에 생기부 진로활동에 적어주고... 

아래는 발표 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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