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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얘기

수학적 모델링 대회 후기.

by Oh 선생 2019.08.29

#1. 우리 학교에선 2학기 초반에(=수시 학생부 반영 마감 이전에) 창의수학페스티벌이라는 걸 한다. 

페스티벌이라 해서 딱히 큰 행사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학년별로 대회를 열고 시상을 하는 편이다. 

3학년의 경우 보통 수리논술대회를 해서 수학경시 성격으로 상을 주는 편이었는데,

언젠가 수시 면접에 갔던 애한테 면접관이 '창의수학페스티벌에서 상을 탔는데, 뭘 했나요?'라고 물어봤다더라. 

딱히 할 말이 없던 것은 뭐 당연한 일이고...

위기의식에 무언가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올해 초부터 구상했던 모델링 대회를 진행하게 됐다. 

 

#2. 

수학적 모델링 대회를 하자니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 수학적 모델링 문제는 어떻게 만드는가?

- 채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채점기준은? 

- 이게 2시간만에 치루어질 대회로 적합한가? 등등등...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 

일단 시작은 자료를 좀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이전에 대학원에서 모델링 관련 작업하시는 분들을 보며

이런 저런 소스를 구할 곳은 좀 알고 있었다. 

 

일단 처음 뒤진 곳은 COMAP(the Consortium for Mathematics and Its Applications).

여기 홈페이지(https://www.comap.com/ )에 들어가면 FREE MATERIAL라는 메뉴가 있는데, 거기에서 

GAIMME(Guidelines for Assessment and Instruction in Mathematical Modeling Education)

라는 자료를 일단 받아서 읽는 데에서 시작했다.

 

자료의 표지는 이렇게 생겼고,

목차는 위와 같다. 

그중에 나한테 필요한건 챕터 3, 4, 부록A정도였던 것 같다. 

자료를 읽으며 적당한 문제후보를 고르고 채점기준 세우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보았다. 

 

그 후에는 이 바닥에서 유명한 MCM(Mathematical Contest in Modeling)자료를 찾아봤다. 

http://www.mathmodels.org/index.html 를 중심으로 자료를 이것저것 뒤지다

2018년 고등학교 MCM문제와 답을 좀 봤는데 답이 너무 수준이 높더라.

아무래도 이런 문제를 다루려면 사전 교육이 많이 필요 할 것 같아서 MCM문제를 베끼는 건 포기. 

그 다음으로 찾아본 건 국내 논문들이었다(여기쯤 보다보니 영어에 지치기도 했고 대회도 임박해서...). 

위 논문을 비롯한 이런저런 국내 논문을 찾아서 참고했다. 

자료를 찾다보니 생각보다 문제들이 입맛에 딱 맞는 게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미적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전 학년이 참여해야 하니까), 풀이가 다양할 수 있으면서도, 

대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그레이드가 나눠질 수 있는 문제였는데 보통 이 세 가지를 다 만족하는게

잘 없어보이더라(내가 못 찾은거겠지...). 

그래서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처음 책에 있는 문제를 약간 어레인지해서 문제를 만들었다. 

실제 시험에 사용한 문제는 찜찜해서 아무데나 공개하기 좀 그런데, 아무튼 위 문제와 거의 똑같이 냈다.

번역수준(...)

 

#3. 

막상 대회를 하려니 애들에게 모델링이라는게 너무 생소한 게 우려가 되었다. 그래서 대회 한 주 전에 아이들을 모아

OT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때 사용한 PPT. 

주로 모델링의 의미와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답안을 기술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했다. 

답안을 기술하는 방법은 MCM대회의 답안지와 GAIMME책을 참고했다. 

의외로 애들은 큰 질문 없이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더라. 잘 모르니까 그런거겠지...--; 

 

#4. 대회 당일. 

3개학년에서 약 80팀 정도가 참가했다. 각 팀은 2인1조로 구성하도록 했다.

4인 정도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문제 난이도나 시험장소를 구하는 문제나 이것 저것 복잡해서 2인에서 제한을 뒀다. 

풀이 시간은 100분.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법 그럴 듯 하게 답을 써냈다. (다들 그럴듯 해서 채점하는데 눈알 빠질뻔...)

수학과 선생님과 부장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무난하게 대회 끝. 

 

#5. 채점

채점 루브릭이야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는데... 이번엔 나도 이런 대회 자체가 처음이라,

배운다는 기분으로 일단 전체 답안을 쭉 훑어보고 채점 기준안을 만들기로 했다. 이틀 정도 걸려서 전체 답안을

읽은뒤 만든 기준안은 이랬다.

채점 기준이야 더 만들려면 더 만들 수도 있고, 쳐내려면 쳐낼 수도 있는데, 일단 지금 내가 애들 답안을 읽고나니

저정도 채점기준이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채점기준을 세운 후 거기에 따라 아이들 답을 다시 읽으며 채점을 했다. 

약간의 계산 오류는 크게 개의치않았고, 비현실적인 가정에는 큰 감점을 줬다. 

창의적인 접근에 좋은 점수를 줬고, 전체 답안 구성이 문제해석-상황분석-모델제시-모델검증-문제해결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으면 잘했다고 평가했다.

의외로 가독성이 평가요소로 고려가 되었는데, 가능하면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일단 내가 A~C 사이에서 그레이드를 나눈 뒤, 수학과 전체 협의회에서 시상작들을 골라냈다. 

일종의 글쓰기에 가까운 대회라, 어느 정도 등급을 나눈 뒤에는 여러 사람의 전문가적 식견을 통해 합의를 맞추는 게 

필연적이라고 생각이 들더라. 답안을 하나쯤 올리고 싶은데, 애들 기록이라 관뒀다. 

 

#6. 대회 후기. 

가. 수학적 의사소통

행사를 치루고 가장 크게 느낀건, 애들이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보통 모델링은 문제해결에 관계되지 않나...??)

이 동네에 얘네만큼 문제 풀이에 도가 튼 애들이 없을 텐데, 그런 애들이 2시간 동안 싸매고 만들어낸 답안지라고는

보기 어려운 수준의 답안지가 절반정도는 나왔다(그리고 나머지의 절반 정도도 채점자를 괴롭게 했다...). 

문제를 명시하고, 과정을 알기 쉽게 작성하고, 따라서 결과가 이렇다는 논리적 흐름을 명확하게 구성하는 게 아이들에겐

무척 힘든일이었나보다(수학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교육과정 상의 수학적 역량은 문제해결, 의사소통, 추론, 창의융합, 정보처리, 태도 및 실천의 6가지인데 

학교에선 지나치게 문제해결에만 초점을 뒀나 하는 느낌이 있다. 

애들한테 수학을 가르칠 때 좀 더 의사소통에 많은 초점을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편 대회를 치루며 아이들이 많이 이야기를 했다던데, 그런 점에서 Open problem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애들 문제 풀라그러면 보통 혼자 싸매고 문제 풀기 쉬우니까... 

 

나. 대회로서 적합성

내 알기로 MCM대회는 문제 공개하고 며칠 시간을 주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을 뒤지건 뭘 뒤지건

답안을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서 내는데... 학교에서 하는 대회가 그렇게 하긴 힘들다. 

상장이 걸리고 내신에 영향을 주면 어른, 학원의 입김이 들어가기 쉽다(엔간하면 애들 하는 대회에 끼지 좀 마라). 

그래서 불가피하게 2시간 짜리 대회로 진행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문제에도 제한이 많고, 아이들 답도 한계가 있다. 

고민할 시간을 더 주고 답안을 작성하고 검토할 시간을 더 줘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모델링이라는 소재를 대회로 풀어내는게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이들이 답안을 써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데 대회를 여는게 합리적인가? 하는 생각도 있다(OT를 하긴 했고, 답안을 잘 쓴 애들이 결국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그래도 애초에 아이들에게 너무 생소한 대회아닐까 싶긴 했다). 

게다가 대회에 참여한 내용은 생기부에 기록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모델링은 학기 프로젝트, 수학과 프로젝트 행사 등으로 바꾸어 한 학기 정도 동안 풀어내도록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상 주면 생기부 기록이 곤란하니까 상 빼버리고. 

한 학기 동안 여유있게 풀어나갈 수 있게 해주면, 아이들이 자기 진로 분야에 적합하게 문제부터 선정하고, 이를

모델링스럽게 풀어나가는 과정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다. 

고3담임, 일이 많아서 지를까말까 하다가 뭐라도 시작 안하면 학교는 안바뀌겠다 싶어서 질러놓은 일이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게 진행됐다. 배운 점도 많았다. 역시 뭐라도 해봐야 배운다. 

 

 

막짤은 19개월 우리 아들. 뭐라도 해야 배운다 아들아... 

 

 

 

댓글3

  • 2019.09.02 14:20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Oh 선생 2019.09.02 14:32 신고

      디테일한 식을 짜거나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건 학생이 하셔야 할 일 같고... 아마 아래 수행평가에서 좀 더 나아간 형태라고 생각됩니다. 참고하시고, 적당히 식 만들어서 미분한다! 그리고 해석한다! 생각해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https://ratel35.tistory.com/246?category=517734

  • 2019.09.02 14:37

    비밀댓글입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