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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일기

수업 관찰을 통해 만나기(1)

by Oh 선생 2018.11.28

#0. 

학교 교육과정 TF에서 수업관찰과 연구회에 대한 인식을 좀 바꿔보고자 작성했던 글. 

그러나 막상 들어가본 TF 분위기는 그런게 아니었고... 아무래도 짬될 것 같은 글인데, 써놓은게 아까우니까 포스팅.

기억에 의존해 쓴 글이고, 참고문헌을 다시 찾아가며 쓰진 않았으니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수업 관찰을 통해 만나기

 

오국환

 

 

0. 들어가며

저는 수업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썩 즐겁진 않습니다. 교사로서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만큼 자랑스럽진 않은 것 같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로 남의 수업은 좀 보고 싶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보고 좋은 건 베껴가고 싶거든요.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의 공개수업, 동료장학은 이러한 욕구들이 중첩되어 낳은 최적화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두가 공강을 내어 수업을 참관하러 들어가지만, 수업에는 깊게 관심을 내비치지 않으며, 적당히 시간과 자리를 메우고 나면 적절한 때 빠져서 수업자가 숨통을 틜 수 있게 해주고, 수업에 대한 논의는 협의록으로 대체하여 불편한 논의는 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말이죠.

이런 공개수업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교사로서 제가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건가 싶은 요식행위에 내 시간을 소비하는 것도 아깝고, 어딘지 모를 계면쩍음이 교사로서의 양심을 찔러오는 것도 싫습니다. 감정을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편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외란 내 노동의 결과물이 나와 유리되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죠. 수업관찰이라는 지극히 선생스러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장학을 할 때 우리들은 전혀 선생답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공개수업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개수업을 통해 성장하고, 선생다움을 느끼며, 동료성을 획득하여 교사로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죠. 이 글은 그런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수업을 본다는 행위의 여러 일면을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막연하게 느껴지던 수업 관찰을 통한 전문성 신장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노력해볼 만한 지점들을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이 글의 전반부에는 수업을 보는 방법에 대한 소개와 이론적 논의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제안을 적었습니다. 사견이 많이 들어간 글입니다. 의문이 드는 점 등은 언제든 말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논의 속에서 우리가 더 나은 길을 찾아가리라 기대합니다.

 

1. 수업을 보는 다양한 접근들

우선 지금까지 알려진 수업을 보는 접근들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입장에서 수업을 보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수업을 본다는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고, 수업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배움의 공동체

우선은 가장 잘 알려진 사토 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 입장에서의 수업 관찰과 연구회입니다. 이는 수업 관찰에 있어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을 관찰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선 제 경험을 기반으로 배움의 공동체 방식의 수업 공개와 연구회를 말해보겠습니다. 배움의 공동체 방식의 수업 관찰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이의 배움을 본다는 개념입니다. 우리 수업 참관 방식과 비교하면 알기 쉬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수업이 이루어지는 뒤편에 앉아 교사를 바라보고 있지요. 그리고 참관록에는 교사가 이래서 잘했고 저래서 아쉬웠다고 기록합니다. 배움의 공동체 입장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수업 교사에게 부담을 주며, 참관 교사의 성장에도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초점을 아이의 배움에 두어 보자는 것이지요. 아이의 배움을 본다는 것은, 수업 참관 동안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하는 여러 표현 속에서 무언가 애가 ~’했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지요. 그러한 순간을 포착해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순간을 포착하려면 교사는 뒤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서서 대기하다가, 아이들의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귀를 기울이며 아이들의 소곤소곤하는 대화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기록하는 것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대화는 쓸데없는 소리가 더 많지만, 계속 듣다보면 어느 순간 이것이 배움이구나, 싶은 부분이 터져 나옵니다.

연구회에서는 이러한 관찰을 나눕니다. 수업 교사가 뭘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수업교사의 수업 속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배우는 것을 봤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요. 수업 교사는 아무래도 초점이 자기에서 벗어나 있으니 조금 덜 부담스럽습니다. 참관 교사들도 남의 수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본 학생의 배움과 그로부터 발생한 나의 배움을 말하게 되니 수업 교사한테도 덜 미안하지요. 배움의 공동체 수업 연구회의 핵심 중 하나는 아이들의 배움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공유함으로써 일종의 임상적 데이터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애들이 뭘 할 때 배운다는 걸 알면 내 수업에서도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배움의 공동체 수업 연구회에서는 수업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참관교사의 배움을 쌓아가는 경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 수업비평

두 번째는 이혁규 교수님의 수업비평의 방식입니다. 수업비평의 관점은 수업을 일종의 예술적 비평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해, 우리가 미술 작품이나 영화를 볼 때 어떻게 비평을 하나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 색이 예쁘네 구도가 어쩌네 하는 직관적이고 명료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깊게는 작품이 가진 의미, 작가의 의도 등을 미학적, 사회적 맥락 등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고자 할 겁니다. 수업 비평은 수업에 대해 이러한 작업을 하자는 것입니다. 수업 현상을 이해해야 할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며, 수업 현상 내의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업 현상을 기술, 분석, 해석, 평가하자는 거죠. 이러한 행위는 글쓰기를 통해 마무리 됩니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 수업 비평은 필연적으로 참관자에게 더 초점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참관자가 수업을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나름의 눈으로 해석하고, 수업 속에 존재하는 수업자의 의미, , 존재, 의도 등을 느껴가는 과정을 글로 써내려가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배움과 이해, 성장 등은 오롯이 참관자의 것입니다. 수업자는 이러한 참관록을 통해 나의 수업의 일면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겁니다. 내 수업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면면을 읽어낸 기록을 통해, 나의 수업을 다시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제가 느끼는 수업 비평은 현장을 바라보는 질적연구자의 시선에 가깝습니다. 질적연구자는 혼란스러운 현장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의미를 찾아내고, 이해하며, 그 고유의 의미를 기존의 이론과 적당히 견주어가며 미지의 생활세계를 독자에게 의미 있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수업 비평을 통해 생각해볼 지점은 수업을 그저 하나의 수업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일련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텍스트로서 종합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의미를 뽑아내고, 글쓰기라는 성찰적 행위를 통해 관찰자의 배움을 이끌어내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 학생의 눈으로 수업 보기

세 번째는 서근원 교수님의 학생의 눈으로 수업보기입니다. 저는 이를 교육인류학의 방법으로 수업을 관찰하자는 주장으로 이해합니다. 우선 교육인류학이 뭔지 알아야 하겠죠. 제가 아는 교육인류학은 어느 현상에 담긴 교육적 사태에 대해 그 체계와 의미 등을 학문적으로 밝혀내고, 이를 통해 사람을 더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10대 청소년들에게 공부란 어떤 의민가 궁금하다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교육인류학자는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할 겁니다. 10대들이 보는 텍스트를 보고, 10대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공부의 의미를 파악해보려 노력할 거라는 거죠. 이렇게 현장에 밀접하게, 내부자적인 입장의 접근을 견지하는 것이 교육인류학의 특징입니다. 결국 서근원 교수님의 학생의 눈으로 수업보기는 이렇게 수업이라는 시공간 내에서 직접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의 생활세계에 주목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수업을 바라보고 이해하자는 주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 중에 제일 앞자리에서 자고 있는 애가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참관자의 시선에서 그 녀석은 그냥 자는 애겠지만, 교육인류학적 관점에서는 그 아이가 어떠한 맥락 속에서 저렇게 자게 되었나를 고민하게 될 겁니다. 수업의 구조가 민주적이지 않아 아이에게 수업 참여에 대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이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고, 교사의 말이 지나치게 빨라 이해가 안되니 졸릴 수도 있겠죠. 이런 방식으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한다면, 자는 애를 그냥 자는 애로 치부하지는 못하게 될 겁니다. 대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겠죠. 다소 예시가 조악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수업을 본다는 건 이런 식의 내부자적 접근, 이해의 확장을 말한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 수업친구 운동

네 번째로 다뤄볼 것은 좋은교사운동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업친구 운동입니다. 수업친구 운동에서는 앞선 수업보기의 방식들이 수업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연구자의 관점에 치우쳐있다고 비판하며 보다 교사의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선 수업보기의 방식을 통해 보다 심도 깊은 수업이해와 이론적 분석, 개선의 틀을 마련했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할 교사의 용기, 내면을 세우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는 거죠. 수업친구 운동에서는 그러한 교사의 내면을 세워주고자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수업친구 방식의 수업연구회는 크게 세 가지에 초점을 두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는 교사가 수업에서 경험하는 딜레마의 도출입니다. 수업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르게 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자꾸 어딘가 께름칙함이 남는 그런 부분을 관찰하고 이끌어 냅니다. 딜레마로 표현되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약함을 대화를 통해 이끌어내고 위로받는 일련의 과정이 이어지지요. 두 번째는 교사의 수업 방식에 대한 인정입니다. ‘꽃 달아주기라고 하더라구요. 당신의 수업에서 이런 부분이 훌륭했다하는 부분을 참관 교사들이 말해줍니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통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수업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부분을 알도록 하고, 수업자가 내면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인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전과제를 제시합니다. 딜레마를 극복하고 더 나은 수업을 하기 위해 이런 걸 더 해보자, 라는 거죠.

 

이상을 통해 수업 보기에 대한 네 가지 접근을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각각의 내용들이 단행본으로 출판될 만큼 덩어리가 있는 내용이라 짧은 글에서 모두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대략적인 그림은 그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러한 일련의 방법들이 가진 공통점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교훈들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위의 방식들은 모두 수업자와 참관자의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평가질을 통해 수업자를 난도질하겠다는 게 아니라, 수업 관찰이라는 임상적 경험을 통해 수업자와 참관자가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겠다는 말이죠. 이때 성장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모호합니다. 수업 관찰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저는 임상적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의는 임상을 거치며 치료에 대한 나름의 실전적인 지식을 축적하면서 의사다운 의사가 되지요. 수련의들을 임상을 시키는 이유는 책만으로는 보고 익힐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교사들의 수업 관찰을 임상적이라 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업이라는 사태를 접하며 책에서 보고 익힐 수 없는 것들을 익혀가는 과정이라는 거지요. 이때 얻어지는 지식은 국소적이고 맥락화된 지식일 겁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개인에게 맥락화되고 국소화된 지식이기에 독특합니다. 책에서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현장, 바로 그 학생에게 적합한 형태의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학 교재에 있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내 현장에선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업 관찰을 통해 얻어진 국소적 지식은 바로 나의 환경으로부터 도출된 지식이기에 다시 나의 환경에 되먹임하기 쉽지요. 소위 실천적 지식이 됩니다. 이 지식의 범주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일단 학생을 중심으로 한 지식에 초점을 두는 게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적합한 과제, 적합한 수업의 형태, 배움이 일어날 만한 적절한 발문, 우리 학생들에게 특히 신경써줘야 하는 심리적인 부분들, 개별 학생들의 삶에 대한 이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학교 전체의 방향, 올바른 교육과정의 구성에 대한 생각 등 말이지요. 그렇기에 수업 공개와 연구회를 거쳐 우리 학생들에 대한 수업은 누구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둘째, 위의 방법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이해란 우리가 공식을 이해하듯이 이해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under-standing, 다른 누군가의 안에 들어가 직접 서봄으로써 대상을 이해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문을 만들자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해한다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사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걸 말로 표현하거나 그 전체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부모님의 사랑의 일면을 이해하게 되지요. 이러한 종류의 이해는 무언가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 대상이 가진 일면을 공감하는 형태의 이해입니다. 공감적 이해, 존재적 만남, 지평의 교차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앞서 논한 방법들에서 수업 관찰은 이러한 형태의 이해를 해나가는 과정으로 자리매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수업을 관찰함으로써 무엇을 이해하는가는, 수업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왜 수업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느냐를 논하고 싶습니다. 저는 수업에 교사로서 우리의 삶이, 실존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일을 생각해봅시다. 이는 분명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부끄러움이 수업을 공개해야 할 때의 곤혹스러움과 같지는 않을 겁니다. 노래나 춤에 우리의 삶이, 교사로서의 내가 들어있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나의 노래나 춤을 부정당하더라도 이건 그냥 창피한 일인거지,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은 아닌 겁니다. 그런데 수업은 조금 다릅니다. 수업을 부정당할 때 우리들은 마음이 무거워 지고, 내가 교사로서 과연 자격이 있는 걸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삶 자체를 버겁게 만듭니다. 수업 하나 잘 안 풀리고 나면 하루 종일 찝찝하잖아요. 이게 과연 단순히 교사로서의 책무감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감정일까요?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교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수업은 스스로의 삶을 펼쳐나가는 공간인거구요.

그렇다면 우리가 수업을 관찰함으로써 이해할 대상이라는 건, 단순히 수업이라는 사태를 넘어 그 이면에 있는 교사의 삶 자체가 될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업 관찰이란 수업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교사의 존재를 접하고, 자신의 존재 지평을 넓히며 타인과의 교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그런 과정인거죠. 쉽게 말해 수업자 자체를 조금 더 이해해가는 과정으로써 수업관찰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수업관찰의 과정은 곧 동료성의 향상과 교사로서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과정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수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과정이 수업 관찰이라면, 어떻게 유대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업 관찰은 우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문성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교육학 타령이 아니라, 우리 맥락 속에서 살아있는 지식이 될 겁니다. 둘째, 수업 관찰은 교사로서 동료성,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삶을 나눈다고 느낄 만큼 밀도 있는 수업 관찰과 연구회를 한다면 말이죠.

긴 글을 읽으시는 동안, 아마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라는 마음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뜬 구름 잡는 얘기 같기도 하고 말이죠. 글의 전반부는 수업 관찰을 위해 마음을 뜨겁게 달궈보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제 후반부에서는 수업 관찰과 연구회를 위한 실질적인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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