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에서 초임시기를 보낸만큼, 그동안 내가 배운 게 한 둘이겠냐만은.

(사실 이 블로그 전체가 내 덕양에서의 기록 아닌가)


마침 교장선생님께서 돌아보는 글을 요청하셔서 짧게 쓴 글. 어디 남겨두면 좋겠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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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1. 최근 들어 국환 샘 많이 착해졌다”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하는 말들을 제법 듣고 있다. 지금도 썩 착한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예전엔 도대체 얼마나 나쁜 놈이었길래(...) 그러나 싶다. 내 주변의 사회적 관계들은 대부분 나에게 능력을 요구하지 도덕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내가 혹시라도 변한 면이 있다면 그건 오롯이 덕양에서 근무한 덕이다.

 내가 변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건 수업 중 애들 자는 걸 볼 때다. 2010년만 해도 혈기 넘치던 20. 수업 중 자는 놈들을 보면 일어나 이 시꺄하기 십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정신줄 놓고 자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런 애들이랑 실랑이하다보면 수업은 수업대로 망가지고 애들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수업 끝나고 나면 애들 욕하기 일쑤였다. “나는 이렇게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 가는데 애들이 처 자!” 하는 생각이랄까.

 그런 생각이 바뀐 건 담임을 맡고 가정방문을 다녀온 후 였다. 사실 가정방문을 꼭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기보단, 다른 담임들이 하니까 우리 학교는 원래 그런가보다 하면서 나갔던 가정방문이었다(초임 담임교사가 뭘 알았겠나. 남들 하는 거 그냥 따라하는 거다). 그런데 그게 컸다. 가스도 나오지 않는 월 10만원짜리 단칸 사글세방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애, 자기 공부방은커녕 몇 평 되지 않는 집에서 여러 식구가 살며 동생들 장난감을 펼치면 앉을 공간조차 안 나오는 애들한테, 넌 꿈이 뭐냐, 니 꿈은 왜 없냐, 성적이 이 모양인데 뭐 해먹고 살거냐, 집에선 왜 공부 안하냐고 묻던 내가 너무 아마추어 같았다. 애들을 교실에 앉혀놓곤 있었지만 결국 내가 봤던 건 눈에 보이는 껍데기뿐, 아이들 삶의 5%도 못보고 있던 게다.

 그때부터 애들이 자면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성적이 저조한 아이들과 상담할 땐 자기 공부방, 자기 책상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말하자면,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다. 너에게도 너의 삶이 있겠구나. 그리고 그 삶은 어리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겠구나. 너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선생질 하는 게 정말 선생이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때쯤부터 덕양중의 여러 행사(옛날엔 정말 행사가 많았다...)가 납득이 갔다.

 결론적으로 내가 덕양에서 얻은 건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아니었나 싶다. 선생은 학생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에만 성립 가능한 개념이다(학생 없이 내가 선생이요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우습다). 그렇다면 선생은 자기 학생을 온전히 인식할 때에만 비로소 선생으로써 존재를 정립하는 것 아닐까. 아무쪼록 선생답게 살 수 있게 해준 학교의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2. 교사 일반론만 쓰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짧지 싶어서 교과 교사로서의 배움도 같이 얘기해볼까 한다. 2010, 전역 후 얼마 되지 않아 집 근처 고등학교의 여름방학 방과후 강사로 수업을 나간 적이 있다. 그땐 고등학교 문과반 여학생들에게 수학1을 가르쳤다. 그런데 수학11학기 분량을 거의 다 뽑아달라는 학교의 요구가 있었다. 아무래도 분량이 말도 안되는 것 같았지만, 그땐 뭘 모르던 때라 일단 촘촘하게 수업 준비를 해갔다. 그리고 그대로 거의 다 수업을 했다. 문제는 나는 수업을 했는데 애들은 뭘 들은 것 같지 않다는 거였다. 나의 열정적인 강의랑 무관하게 애들은 잤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뭐 하는거야?’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어린 선생이 와서 떠드는 게 불쌍하니까 수업을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때 많이 고민이 되었었다. 이게 대한민국의 학교구나. 내가 뛸 필드가 이렇구나. 아무리 나라고 해도(이땐 한창 자신감이 넘칠 때였으니까!) 이 망가진 필드 위에 홀로 우뚝 설 순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덕양에 발령이 났다.

 초임 수학선생이라면, ‘활동에 지나치게 꽂혀 활동에서 머물거나 수업에서 뭘 했니?” “만들기 했어요!” - ‘수학에 지나치게 꽂혀 혼자서만 이데아의 세계에 오르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기 쉽다. 덕양중에 발령받은 초기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선생이니만큼 뭔가 이런저런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수학선생으로서의 정체성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가령 2011년에 했었던 수학 자유탐구수행평가 같은 게 그런거다. 이경탁 선생님께서 과학 자유탐구 하시는 걸 보고 ! 저거 좋은데?’ 하면서 무작정 흉내 냈었는데, 결과는 영 신통찮았다. 일단 내가 아이들의 탐구를 이끌어갈 역량이 부족했고, 중학생 수준에서 수학을 탐구한다는 게 아이들의 수준에 맞지 않았다. 구체적 조작에서 이제 막 추상적 조작으로 넘어가는 애들에게 수학적 주제를 탐구하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러던 중, 덕양에 감화되어(?) 아이들의 삶, 맥락 같은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업이 조금 흡족하게 바뀌기 시작한 건 그때 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의 삶, 아이들의 수준을 직접적으로 수업에 녹여야지 싶었다. 가령 2012년에 했던 삼각비 탐구(줄자와 간이 측각기로 학교의 높이 측정하기) 같은 게 그런 예다. 삼각비(사인, 코사인...) 같은 건 백날 배워봤자 직각삼각형의 변들의 비율이거나, 공식으로만 남아있기 쉬운데, 직접 실물을 들고 나가 삼각비를 써먹어 보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맥락을 쥐어줬다. 2014년의 통계로 보는 자화상도 좋은 예다. 3 통계의 대푯값과 산포도 개념은 결국 자료의 분포와 관련을 지어주지 않으면 제곱의 평균 빼기 평균의 제곱따위로 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과정보다 조금 더 내용을 다루게 되더라도, 자료를 직접 조사하고, 그 자료의 정규분포를 가정하여 자신이 그 분포의 어디쯤에 위치하는 지를 생각해보도록 했다. 2015년에 했던 마을 휠체어램프 지도 만들기 활동은 마을이라는 아이들의 맥락을 극대화시킨 예시였고, 자신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찾아보고, 이를 정량화하여 그것들의 관계를 함수의 그래프로 시각화 한 함수: 보이지 않는 것들 활동은 아이들의 마음을 수업에 끌어온 예시였다.

 돌이켜보니 7년 만에 수학교사로서 제법 컸지 싶다. 덕양에서 이런 저런 활동 등을 해보면서 교과교사로서 배운 걸 요약하면 대충 이런 것 같다. 배움이라는 건 삶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이들과 분리되어 시작된 배움은 결국 아이들의 삶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삶에 머물기만 해서도 안된다. 교육은 변화를 만드는, 삶을 바꿔가는 일이기에 그렇다. 교과교사라면, 나의 교과가 줄 수 있는 덕목, 기쁨, 실질적인 유익 등으로 아이들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삶과 나의 교과를 진짜로만나게 해줘야 배움이 생긴다. 아이들이 나의 수학 수업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여겼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수업 중 아이들이 진짜로 수학을 만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구성주의의 조상님(?) 쯤 되는 듀이도 비슷한 얘기들을 했다. 나는 그의 말을 결국 가로-세로로 배움이 일어나야한단 말로 이해한다. 아이들의 삶, 아이들의 현재로부터 수업이 시작되어야 하고(가로), 이로부터 최종적으로는 학문적인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세로). 그런데 그 균형을 잡는 게 힘들다. 과목 자체가 위계적인 수학선생은 후자에만 몰입하기 쉽고, 또 그게 미덕인 줄 알기 쉽다. 덕양에서의 7년은 분명 그러한 배움의 또 다른 일면 가로 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Posted by Oh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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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한가운데 2017.11.02 0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오래 안 왔네요 저...
    '배움이라는 건 삶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짜 그런 것 같아요...
    흐흐 여튼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저경력 시절에 좋은 학교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근무했다는 건 정말 큰 복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