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좋은 수학 수업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수학수업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고루 참여하게 되는 첫 번째 단계, 

첫 단계에서의 참여를 바탕으로 수준의 상승을 만들어내는 두 번째 단계. 

나의 경우 첫 단계를 이런저런 아이들의 풀이와 발표로, 두 번째 단계를 여러가지 풀이의 연결로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두 단계를 모두 구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는 문제를 던져주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애들이 어떻게 푸는 가를 본다. 

그리고 좋은 풀이들을 적절히 순서화하여 배열하고 발표시킨다. 

학급 분위기가 괜찮으면, 이런 접근은 꽤 재밌고, 배움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1. 

문제는 학급의 분위기를 잘못 만들었을 때다. 담임 학급이 그렇다. 

3학년인지라 수업 분위기는 조금 더 자율적으로 형성해가기를 바랬고, 그렇게 될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아이들은 발표했다가 틀리는 것을 두려워 했고(내가 의도적으로 틀린 아이들을 발표 시킨 탓도 있다. 틀린 문제로부터

배움을 만들어내려는 것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줬나 보다), 

'다른 풀이'의 가치에 대해 소홀히 했고, 풀이를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가졌다. 

그리고 나의 질문을 '틀린 것을 혼낸다'고 여겼다(내 말투가 문젠가 싶다). 

물론 이런 문제에는 예습 등의 여러 원인도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애초에 수업의 문화를 잘못 형성한 나의 탓이다. 

이런 분위기는 수학수업 뿐 아니라, 다른 수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반은 어느새 여러 선생님들이 상당히 힘들어 하는, 그런 반이 되었다. 


#2. 

문제가 있으면 개선을 해야 한다. 

첫 번째는 아이들에게 서신을 날렸다. 


* 4월의 편지--------------------------------------------------------------------------------------------------------------------

4월을 보내며...

 

#1. 4월에도 많은 일이 있었네. 원래 4월은 좀 차분하고 한가하게 돌아가는 달인데, 이상하게 올해는 더 바빴지 싶다. 나만 그렇진 않았을 것 같다. 니들도 뭔가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 바쁜 가운데에서도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사실 나도 어렵다).

 

#2. 수업 얘기를 안 할 수 없지.

나는 우리 반 수업을 할 때 마다 종종 속상한 경우가 있다. 내가 지도하는 4개 반 중 가장 잘 가르치고 싶은 반인데, 가장 잘 안 되는 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1번은 나의 부족함이겠지만- 말을 들어주는 것, 남의 말로부터 배우는 것의 의미를 아직 충분히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도 말했듯, 모든 지식은 남의 말과 글을 통해 표현 될 때 그 사람 고유의 미묘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미묘한 차이는 너희의 배움에 생생함과 풍부함을 부여한다. 쉽게 말해, 니들이 스스로 하는 발표는 틀리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뭔가 듣는 사람들이 끼어들고 생각해볼 거리가 있는 반면, 내가 하는 설명은 거의 틀리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정작 너희들이 생각하고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야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수업에 임해서는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참여하며,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줘야 한다. 또한 동시에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설명할 때에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설명해줘야 한다. 그래야 그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렇게 풀면 됩니다라는 설명에서는 어떤 미묘한 차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미묘함을 존중하는 가운데 더 깊은 배움, 서로의 수준 상승이 일어나고, 그렇게 더 나은 반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모두 더 잘 배울 수 있다.

틀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틀림은 개인의 맥락에선 그저 틀림일 뿐이지만, 그것이 모두의 맥락으로 옮겨올 땐 배움의 기회가 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배움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그러한 틀림이다. 그렇기에 내가 틀릴 것이라는 부담 없이, 자신의 풀이, 자신의 생각을 더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틀림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되려면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던지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일단 남의 말을 충분히 들어본 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거지. 그게 올바른 학적(學的) 대화의 태도다. 그 성숙한 분위기 속에 더 깊은 배움이 들어있다. 각자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발표하고, 잘 듣고, 아이디어의 어설픈 부분을 서로 지적해주고, 그걸 커버하고, 틀렸던 부분을 고쳐가는, 그런 수업 기대 되지 않나? 나는 언제나 그런 수업이 되기를 꿈꾼다. 나는 여러분이 좋은 자질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좋은 수업, 좋은 배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3. 내가 도와줄 부분이 있을 것으로 안다. 1:1로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그런 부분들... 5월에 본격적으로 수업에 대해 얘기할 때, 내가 실질적으로 도울 만한 부분을 모색해보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내가 직접 붙잡아놓고 지도를 하거나, 좋은 과제, 도전적인 과제를 좀 더 찾아서 가져간다거나 방법들이 있을 것 같다. 너희나, 나나, 좀 더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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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는?

별로 없었다. 애초에 글이 길면 애들은 잘 안읽는다(...)



#3. 

이러던 중, 하루는 도저히 빡쳐서 수업 못하겠다 싶었다. 교실에 가득 한 회의감, 공허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수업 중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종례 때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이랬다(정리는 내가 했다). 


문제는 발표가 성의 없고 재미가 없다는 것, 아이들 사이의 학습 속도가 차이 난다는 것,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 모둠까지 풀이를 모두 하고 난 뒤에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 

친구들의 도움, 수업 중의 도움 이상으로 무언가 더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였다. 

(많기도 하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수업 중 한 시간을 할애하여 월드카페를 했다. 

월드카페에서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1. 수업시간이 소란해지는 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2. 예습한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함께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3. 배움에 시간이 걸리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4. 발표를 즐겁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수업시간이 소란해지는 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2. 예습한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함께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3. 배움에 시간이 걸리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4. 발표를 즐겁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있지만(지나치게 교사의 개입에 의존한다는 점, 외적 동기에 매달린다는 점 등...)

그래도 그냥 진행한다. 

정리한 버전을 인쇄해서 칠판에 붙이고, 이거 괜찮다 싶은 의견에 스티커를 붙이게끔 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교사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결과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학급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다음의 일들을 하기로 했다.

 

0. 종이 치면 모두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한다(-> 수학샘이 노래를 해준다와 딜 해서 얻은 내용)

1. 재미진 (추가) 문제를 준다. 

2. 반 멘토링을 한다. 

3. 자리배치를 담임이 개입하여 수정한다. 


사실 이걸 가지고서 뭐가 막 혁신적으로 바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제일 아팠던 '발표'의 문제가 잘 해결된 것 같지도 않다. 

담임과 온도차가 크다는 것도 알 것 같다(내가 내려놓을 부분도 있지 싶다). 

다만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알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수업 중 유난히 시끄러운 녀석들에 대한 개인 면담과 지지(학습 보조 노트를 만들어 줬고, 매주 금요일마다

남아서 점검/공부를 좀 하기로 했다), 잘 하는데 뺀질거리는 녀석들에 대한 면담 등을 실시했다. 

더 나아지겠지... 




Posted by Oh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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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혼자라고생각말기 2017.06.18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새 학교 학생들이 이전 학생들에 비해 발표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서 조금 힘들어하고 있어요ㅠㅠ 중간에 쌤이 바뀌니까 그 사실 자체가 부담도되고 관계 맺는것도 힘들고 그러네요 ㅎㅎ.

  2. 사막한가운데 2017.07.20 15: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래해주기라니 ㅋㅋㅋㅋ 너무 귀엽네요 ㅋㅋ
    이후의 변화는 어땠나요?!

    • Oh 선생 2017.07.24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뭐 사실 큰 변화는 없었어. 서로 조금씩 눈치를 보는 것, 발표하는 데 조금 성의가 있어진 것 정도... 너무 큰 변화를 기대했나 싶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