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먹기 아쉬운 수업 얘기.


#1.

2학년 수업 중에 이런 문제를 풀었다:

a, b는 모두 자연수. a는 5로 나눠 나머지가 4인 수. b는 5로 나눠 나머지가 2인 수.

ab를 5로 나누면 나머지는 얼마겠니?

대충 보면 a=5k+4, b=5l+2로 놓고 ab를 곱셈공식으로 전개하여 풀라는 문제다.

그런데 던져놓고 나니 아이들 접근이 상당히 재미지다.


풀이1: 조건을 만족하는 a와 b를 찾아서 대입하는 경우. 그러니까 대충 a는 9, b는 7이면 되고,

ab는 63이니까, 5로 나누면 나머지는 3이란 말이다.


풀이2: a가 될만한 수는 4, 9, 14, 19... 일의 자리가 모두 4 아니면 9인 애들이다.

b가 될만한 수는 2, 7, 12, 17... 일의 자리가 모두 2 아니면 7인 애들이다.

그래서 이 네 가지 수만 이리저리 곱해본다. 2*4=8, 2*9 = 18, 7*4 = 28, 7*9 = 63.

5로 나눈 나머지가 모두 3이 나온다.

(10의 자리 이상은 왜 신경 안썼는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캐묻진 않았다. 대충 감으로 알 듯 하여. 어려운 질문으로 곤란한 것보단 일단 신나서 지 아이디어를 말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풀이3: 전형적인 풀이(a=5x+4, b=5y+2로 놓고 푸는 풀이).


세 풀이는, 가면 갈 수록 점차 세련되어지는 풀이고,

특히 두 번째 풀이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매우 생생하게 살아있는 풀이이다.

애가 어디서 보고 배운게 아니라, 이런저런 관찰을 해보고, 나름대로 추론을 내리고, 그걸 검증해본 그런 풀이.

그리고 세 번째 풀이로의 연결고리도 충분히 있는 풀이. 마침 풀이 순서도 1-2-3으로 딱 나와줬다.

나는 두 번째 풀이에서 아이가 만든 4가지 분류를 2가지로 좁혀준 후

(일의 자리가 9인 분류는 4인 분류로 통합되고, 7인 분류는 2인 분류로 통합시킨다)

세 번째 풀이를 설명하라 했다.

이렇게 점차 세련되게 풀이가 발전하는 경우는 아무리 모니터링 하고 의도적으로 순서를 맞추려고 해도

잘 안되는데,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애들이 풀이를 점차 멋지게 만들어가서,

아 오늘은 내가 운이 참 좋구나... 싶었다. 녹화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쉬운 수업.



#2.

그리고 나서 오후에 3학년 수업. 이차방정식을 풀기 위한 스킬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인수분해를 이용한 이차방정식의 풀이)

이 부분은 어쨌든 모든 아이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문제를 기본적인 방정식 풀이 중심으로 냈더니...

선행을 해온 아이들이 상당히 지루해 한다. 심란하다.

(선행을 하면 뭘 재밌어 하겠나 하는 마음도 있지만 - 그러면 문제 해결이 안된다.)


결국 문제는 점프과제가 있냐 없냐, 그리고 내가

"못하는 아이들도 점프과제를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라는 명제를 신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듯 하다.

나는 이걸 신뢰하지 못해서 이 부분은 스킬이 좀 더 필요해! 라고 접근하고 있는 거겠지.

(스킬을 중심으로 해도 얻는 건 있다. 평소에 잘 안하던 놈들이 한 두 문제라도 좀 해보긴 하고...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필요한 게 서로 호혜적으로 배우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일텐데, 3학년 쯤 되면 다들

머리도 굵어지고 서로 제 갈길 가는 아이들인걸 어렴풋이 알아서 그런지, 잘 안된다.

다 선생이 못난 탓이겠지.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숙제는 두 가지:
- 점프과제를 활동지에 살려서 넣어두기(일단 이걸 투입해서 풀릴 문젤지 아닐지를 판단해야 하니까)

- 서로 도와주는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 할 방책 마련하기(뭘 어떻게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숙제)


우리 반 이름은 나침반이다.

Posted by Oh 선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사막한가운데 2017.04.20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오.. #1 진짜 재밌어요...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고, 그래서 생각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수업 분위기가 되었을까요? 형의 노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네요 ㅎ

    #2.의 숙제 두 개는.. 진짜 극악이네요 ㅠㅠ

  2. Beastmode 2017.04.25 2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생들이 함께 커뮤니케이션하고 함께 해결해야하는 문제상황을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교육에서 학생-학생 간의 소통은 중요하지만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조별과제가 대안이 되려나요

    • Oh 선생 2017.05.11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구조를 만드는게 사실 쉽지가 않네요. 제 개인적인 성향도 지그소 모형이나... 그런 형태를 선호하진 않구요. 요샌 나름대로 변화를 주려고 노력중입니다. 나중에 포스팅을 해보지용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