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워크숍

선생일기 2017.02.19 18:29

#0. 

복직을 위해 2017학년도 대비 우리 학교 교육과정 워크숍에 참석해서 

이런저런 교육도 받고 함께 논의도 하고 뭐 그런 중이다.

우리 학교는 올해도 어김없이 통합 교육과정 등을 계획한다. 


우리 학교에서 진행하는 통합 교육과정의 큰 구조는 각 학년 별로 다양성, 관계-정의, 생태라는 큰 테마를 잡은 뒤

그 내부에서 몇 개 교과가 연계된 교과별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거다. 

예를 들어 중1의 테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이 테마는 '나'를 이해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한다. 

이에 따라 가정, 사회, 국어 등의 교과에서 '나'를 이해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몇 주간 그런 수업을 진행한다.


몇 년이나 봐왔지만, 이런 틀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그 성패야 어찌됐건). 

교육과정을 이런 식으로도 돌릴 수 있다는건 나에게 대단히 큰 공부가 된다.

 

#1. 

그런데 그러한 융합 프로젝트 한 가운데 홀로 떠도는 과목이 있으니, 다름아닌 수학이 바로 그렇다. 

교과 융합 프로젝트를 하려면 어느 정도 교육과정 순서도 좀 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큰 지식 없이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데 수학은 어지간하면 교과서 순서를 뒤틀기 어렵고

(함수를 먼저 배우고 문자와 식을 배우긴 어렵다)

프로젝트에 진짜 유용할만한 수학적 내용은 중학교 수준에선 좀 어렵다. 

그래서 융합을 하려면 교육과정에 제시된 수학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이것도 수학이니까'라면서 갖다 붙이거나, 

이 활동을 통해 수학학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같이 하면 좋은 거지 뭐~ 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곤 한다. 

그렇게 몇 번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수학 학습'을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저런 프로젝트에 회의적으로 변하기 쉽고, 

결국 나중에는 '수학은 저런거 안돼', 혹은 '수학은 그냥 그걸 중심으로 하고 다른 걸 내가 배워서 갖다 붙이는게

더 효율적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반론적인것 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냥 내가 저렇다)


#2. 

내가 느끼는 갈등을 보다 명확하게 나타내면 이렇다. 

> 학교 교육과정은 보다 아이들의 삶, 아이들의 경험에 기반한 수업을 하길 바란다. 

말하자면, 과목간의 경계를 허물고 가능하면 '삶'과의 연속선 상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란 본래 '과목'으로 분절되어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대단히 바람직 하다. 

 

> 그런데 수학은 아이들의 삶, 아이들의 경험에서 상당부분 동떨어져 있다. '삶'에 초점을 맞추면 수학이 훼손되기 쉽다. 

수학은 교과 그 자체로 고유성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과목이다. 


이런 두 가지 생각이 상충하고 있는게 현재의 내 상태인 듯 하다. 이제 문제가 명확해 졌다. 


그럼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수학 학습은 수학의 맥락 속에서, 그 고유의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강해서 인 듯 하다. 

예전에 대학원에서 외국인 교수가 창의성의 '몰입' 개념을 수학교육에 적용한 자신의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국인 교수에 의해 나온 질문 중 하나가 '그래서 그게 수학에 특화된 무언가가 있는 것이냐?'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질문을 제일 먼저 떠올렸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 배경에는 결국 수학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그 고유의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수학 학습'이라는 주제를 특화시켜, 세분화시켜 다룰 수 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뭉쳐있는 것을 세밀하게 갈라치는 것이 연구자가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이, 배움이나 교육이라는 현상이 그런 식으로 '갈라진 채' 이루어지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수학교육 연구가 갈라쳐 놓은 맥락들을 교육에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하면 마찰이 적지 않게 생긴다. 

내가 겪는 갈등도 사실은 이런 마찰이 아닐까 싶다. 

한 발은 대학원에 걸쳐놓고, 한 발은 현장에 걸쳐놓으려니 서로 다른 요구에 대해 정신이 혼란스럽다. 


#4.

이런 문제는 교사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나는 학부 내내 '아이들의 총체적인 삶' 같은 얘기를 수학과 관련지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교육받은 교사들이 현장에 나가니 현장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못 받아들이기도 한다) 


#5. 

나는 '수학교육' 이라는 분야 고유의 교수학습이론이나 방법이 실제와 달라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분절된 관점 만큼이나 아이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요새 수학교육도 비슷한 소리 많이 했다. 사회문화적 이론, 참여로서의 학습, 내러티브...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얘기 아닌가 싶다)


#6. 

개인적으로 수학 체험전을 싫어했었는데, 이번 워크숍을 통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수학학습에 연계할 수 있는 삶의 맥락이 거의 없다면, 체험전을 통해 그걸 심어줄 수도 있겠구나 싶다. 

굳이 체험전 그 자리에서 수학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언젠가 그걸 수업 속에서 맞닥트렸을 때 그 아이는 분명 그 맥락을 떠올리고 자기의 '이야기'를 수학 교과서의 내용과

연결지어 말할 수 있게 될 것 아닌가? 

역시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7.

그래서 올해 수업에서 키워드를 생각해보자면 대충 이런거다. 

- 총체적인 삶, 아이의 존재지평, 자신의 '이야기', 이야기의 교류. + 아이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 

이런걸 구현한게 함수 수행평가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자신의 기분을 함수 그래프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글을 적어보기)

이런 아이템들을 더 많이 만들어봐야 겠다. 




워크숍 프로그램 중 우리 교장샘께서 그려주신 내 얼굴이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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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h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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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차 2017.02.20 2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번 볼까 ㅎㅎ
    나... 문자와 식보다 함수를 먼저 하려고 하는데...?

    • Oh 선생 2017.02.21 0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렵다'지 '불가능하다'는 아니니까요...--;
      사실 저도 문자의 도입은 함수스러운 맥락에서, 변화하는 양을 다루며 도입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2. 사막한가운데 2017.02.21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할 거리, 얘기할 거리가 너무 많은 글이네요 ㅎㅎ 긴 얘길 해야할 거리들은 제외하고 인터넷 댓글 정도로 이야기하기 편한 것들만 ㅋㅋㅋ

    통합 교육과정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학교 차원에서 그런게 이뤄질 수 있는거죠...? 관리자의 의지? 구성원들의 노력?

    수학은 정말 수학 고유의 특성이 강한 것 같아요. 예전엔 어떤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대부분의 교과는 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드러내는 것 같아요.)로서의 역할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그리고 그런 역할이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전부는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동기 중 한 명이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어요. 수학은 게임같다고. 어쩌면 그게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좋아하고 또 수학을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단 느낌...

    써놓고보니 댓글로 이야기하기 묵직한 것들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헤헤 얼른 얼굴보고 이야기들 나누고 싶어요!

  3. 차차 2017.02.23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ㅎㅎ 뭐 시비걸자는 건 아니었는데 ^^;; 너희 학교 이야기가 궁금한 탓도 있어 ㅋㅋ

    • Oh 선생 2017.02.23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시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ㅋㅋ
      아 그러네? 라고 생각했죠 뭐ㅋ
      복직도 안했는데 2주째 학교에 출근 중입니다. 흐어어...

  4. 정진아 2017.08.03 1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블로그 재밌네요
    3년전에 가르쳤던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 이런 말을 하데요 `선생님 음수는 불쌍해요 둘이 더하면 더 작아지잖아요` 그학생은 음수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듯 해요^^
    수학적 사고와 거리가 있지만 `나`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이런 활동을 해도 좋을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