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학기 수강했던 존경하는 조용환 교수님 수업 중 썼던 중간보고서. 글이 아까워서  포스팅. 


됨(becoming)에 대한 논의: ‘수학교사 됨’에 대한 탐구의 전초로써


오국환

 


1. 들어가며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수업 관련 연수를 나갈 일이 생겼다. 과목별로 수강신청을 받아 주말마다 진행하는 연수이다. 그런데 내가 맡은 수학 반만 강사가 둘이라고 한다. 수강신청 인원이 수용 가능한 인원을 한참 넘어서, 불가피하게 반을 2개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수학선생들은 참 유난스럽다. 지난겨울에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영하 10도, 몇 년 만에 폭설이 내려 버스가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는 길을 뚫고 400명에 가까운 수학선생들이 모여 연수1)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유난스러움의 뒤에는 무언가 공통적인 정서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마음의 부채(負債), 존재론적 위기, ‘수학교사 됨’에 대한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자신에게 없는 부분들을 메꿔보려 하는 절실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이러한 열망은 다소 부산스러운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혹은 수학교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다양한 연수를 찾아다니는 방식으로만 해소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학교사 교육을 다루는 문헌들은 Shulman(1986) 이래 교사지식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들은 수학교사의 지식을 다양하게 범주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몰두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이 과연 수학교사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는가? 수학교사들이 경험하는 존재론적 위기에 대한 성찰 없이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에 나는 ‘수학교사 됨’이 가진 의미를 우선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수학교사에게 필연적인 삶의 양식으로 부여되는 ‘수학교사 됨’의 의미를 파악하여 수학교사 교육에 관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를 위한 전초작업으로 우선 ‘됨’에 대한 의미 탐색을 실시하였다. 삶 속에서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는 ‘됨’의 모습들을 파악함으로써 됨의 의미와 구조를 파악하려는 것이다2).

 이를 위해 ‘becoming’, ‘교사’, ‘됨’ 등을 키워드로 하여 문헌을 수집하였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됨’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이 제시된 문헌이었다. 선행 연구자의 기술을 통해 그 속에 담겨진 ‘됨’의 의미와 구조를 분석-종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워드 검색을 통해 골라낸 37편의 논문 중 13편을 질적으로 읽어내고, 이를 통해 ‘됨’에 대한 의미를 내 나름대로 재구성해보았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됨’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2. 다양한 ‘됨’들  


 ‘becoming’은 주로 ‘되어감’, ‘됨’, ‘되기’ 등으로 번역되며, 때로는 형성으로, 때로는 변화로 번역되기도 한다(예를 들어 조용환, 1997). 이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단어가 나타내는 현상들이 무수히 다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수히 다양한 현상들이 모두 ‘becoming’이라고 불리는 어떠한 공통점 또한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becoming’이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가 등장하는 다양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살피며 그 맥락 속에서 실제로 그 단어가 지칭하는 현상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현상학의 말을 빌리자면, 자유변경을 통해 다양한 개별적 대상 속의 어떤 요소가 그러한 본질을 구현하는 요소인지 파악하는 현상적 환원을 해내야 한다는 말이다(이남인, 2004). 나는 문헌을 통해 ‘됨’이 나타나는 양상을 적응으로서의 됨,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 타인을 책임짐으로써의 됨, 탈주로써의 됨으로 파악하였다.


가. 적응으로서의 됨

 ‘됨’의 의미가 드러나는 첫 번째 양상은 ‘적응으로서의 됨’이다. 조용환(1997: 21)은 “인간의 변화는 태어나고 자라서 한 사회의 의엿한 구성원이 되는 과정은 물론이요, 새로운, 지식, 기술, 가치, 습관, 지위를 획득하는 크고 작은 모든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적응으로서의 됨은 이 중 “한 사회의 의엿한 구성원이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종류의 됨은 남성의 유아교사 되어가기를 다룬 백승훈, 노진형(2013)의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백승훈, 노진형(2013)에서 연구참여자는 성인 남성을 위한 화장실조차 준비되지 않은 유치원의 “배려되지 못한 환경”3)을 경험하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누구하나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는, “선임병”이 없는 유치원의 교직 사회에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도 연구참여자는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남자 유아교사로서 자리를 잡아간다.

 적응으로서의 됨에 대한 의미는 북한이탈여성의 어머니 됨 경험을 다룬 정현숙(2014)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정현숙(2014)이 보여주는 북한이탈여성의 적응으로서의 됨은 우선 ‘낯섬’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생전 처음으로 접하는 ‘태교’라는 말을 신기하게 여기며, 한편으로 이를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한다. 비록 이 낯섬이 긍정적으로 경험되는지, 혹은 부정적으로 경험되는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이는 백승훈, 노진형(2013)에서 나타난 남자 유아교사의 “배려되지 못한 환경”에 대한 경험과도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한편 적응으로서의 됨에는 고통의 의미가 따르기도 한다. 정현숙(2014: 135)에 나타난 북한이탈여성들은 “둘째 애 임신해서 5, 6개월 됐을 때 큰애 업고 아파트 15층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라고 말할 만큼 심적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고통은 학부모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 빠지고 눈에 눈물이 맺히고 허탈”(백승훈, 노진형, 2013: 64)함을 느끼는 남자유아교사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적응으로서의 됨이 언제나 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김경숙, 정미라(2015)는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가치관과 삶의 맥락에 따라 양육전략이 수립되고,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치관을 조절하거나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고, 삶의 맥락을 조절하며, 새로운 양육전략을 수립하는 과정”(p. 150)으로 설명한다. 이는 곧 적응이 어려움을 수반하면서도 마침내 점진적인 해결양상을 보임을 의미한다. 또한 다문화 가정 여성결혼 이민자의 체험을 다룬 이유나(2015)에서는 ‘어머니 됨’이 다음과 같이 적응에 대한 기대로서 경험되기도 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많이 많이... 책임감 있어야 해요. 혼자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 와서 엄마가 되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어려움이 많았어요. 이제는 다 지난 일이예요. 안 좋은 것 잊어버리고... 나랑 우리 아이들 다 한국 사람이예요. 필리핀 사람 아니고요. 나는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 잘 키우고 싶어요. 성공한 한국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똑똑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노력 많이 할 거예요.(이유나, 2015: 22-23)


 다시 말해, 이유나(2015)에서의 ‘어머니 됨’은 성공적인 적응을 통해 특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거듭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나.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

 ‘됨’이 가지는 두 번째 양상은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이다. ‘적응으로서의 됨’이 ‘됨’의 외부적-일차적 양상을 주로 설명하는 것이라면,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은 ‘됨’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내부적-이차적 양상을 설명한다. 이러한 ‘됨’은 주로 교사들의 실천을 나타낸 문헌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류수진(2010)은 미술교사가 아동들과 소그룹 프로젝트 학습을 수행하며 반성적 실천을 통해 연구자로서의 교사라는 정체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연구자로서의 미술교사 되어가기”(p. 123)라고 표현했다. 류수진(2010: 145-146)에 나타난 미술교사는 “좋은 교사를 포기하고 그냥저냥 교사라는 직함을 단 직장인”이라는 정체성과 “좋은 교사”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소시민적 타협”에 대한 유혹을 느끼면서도 “아이들에게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함을 고백한다.

 김대훈(2015) 또한 학습공동체에 참여한 지리교사의 정체성 발달 양상을 묘사했다. 김대훈(2015)의 연구참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전에는 그저 선생님을 하기 싫어했죠. 어떻게 하면 다른 걸로 해볼까. 이제는 그런 생각 전혀 안하구요. 지리교사로서 평생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해요. 이왕 하는 거, 열심히 잘 해야겠죠. 다른 선생님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잘 할 수는 없지만 더 열심히 하려고는 해요. 지리교사로서의 정체성이 이 모임을 통해서 원래 없었다가 잡힌 거죠.(김대훈, 2015: 23)


 이러한 묘사들은 ‘됨’이 개인의 정체성 변화를 수반하는 현상임을 말해준다.


다. 타인을 책임짐으로써의 됨

 ‘됨’의 세 번째 양상은 ‘타인을 책임짐으로써의 됨’이다. 앞선 ‘됨’의 양상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고립된 현상으로 표현되었다면, 이 양상은 ‘됨’이 가진 사회적 성격을 설명한다. 이러한 ‘됨’은 특히 교사나 부모와 같이 교사-학생, 부모-자식 등의 이항관계 속에서 그 존재가 확립되는 ‘됨’에서 주로 나타난다.

 서덕희(2010)는 ‘부모-되기’를 통해 이러한 ‘됨’의 양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서덕희(2010)는 부모-되기의 교육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모-되기가 드러내는 교육적 의미는 근원적인 의미에서 가르침, 즉 교사가 된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교사는 학생의 얼굴을 마주 보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두려움을 떠안고, 장막을 거두고 편견 없이 학생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 자신의 몸 전체가 학생에게 모방의 대상이 된다는 준엄함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성찰하며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도와야 한다. ... 스스로의 날개 짓이 무리를 뒤따라 날아오르도록 한다. (서덕희, 2010: 148)


 즉, 부모가 되는 것은 오롯이 혼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두려움을 마주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삶 속으로 담아내면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타인을 책임짐으로써의 됨’의 양상은 한 초등교사가 제자와 대화적 삶을 구성하며 스스로 교사됨을 경험하는 과정을 묘사한 박세원, 김윤미(2010)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실존성을 가진 교사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중심에는 아동들과의 대화적 삶의 구성을 가능케 하는 자신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중략)... 교사가 자신의 언어로 아동과의 대화적 삶을 존재하게 하는 곳에서 교사로서 나는 진정 나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세원, 김윤미, 2010: 256)


 제자의 삶을 알고, 제자와 대화적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언어, 자신의 삶을 깨닫는 과정은 됨이 어떻게 이항관계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됨은 종종 일상의 용어로 “교사와 아이들 간의 사랑의 관계”(김창복, 이경순, 2009: 200)로 표현된다4).


라. 탈주로써의 됨

 ‘됨’이 갖는 네 번째 양상은 ‘탈주로써의 됨’이다. 이때 탈주는 들뢰즈의 의미에서 “탈영토화를 통해 끊임없이 탈주하는 방향성을 지니는 단계”, 잠재성의 세계로 회귀하는 단계를 의미한다(김재춘, 2010). 이는 교사교육의 차원에서 볼 때 자신의 세계와 역동적인 관련을 맺으며,  매순간 차이를 거듭하며 새롭게 변이되는 존재로서 교사를 바라봄을 의미한다. 

 이러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을 통해 김성숙, 임부연(2015)은 심미적 수업 컨설팅5)에 참가한 초임 유아교사의 ‘교사 됨’의 과정을 묘사한다. 이들의 연구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심미적 수업 컨설팅에 참여하며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감각을 넘어선 수업을 실시하고, 교수기술과 ‘시적 존재’로서의 일상의 변화를 체험한다.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중략)... 일단 저도 저 나름의 사소한 변화들, 소소한 것들이 생긴 것 같고 저도 어떻게 보면 그냥 그런 수업들만 하고 살았었을 수도 있는데...(김성숙, 임부연, 2015: 416)


이러한 연구참여자의 말은 김성숙, 임부연(2015)에 표현된 ‘됨’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됨’임을 보여준다6).


3. ‘됨’의 구조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다양한 됨의 양상을 ‘적응으로서의 됨’,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 ‘타인을 책임짐으로써의 됨’, ‘탈주로써의 됨’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됨의 양상 속에서 나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느낄 수 있었다.

 첫째, 됨은 기존의 문(文)적 세계에 대한 해체-재구성의 조합이다. 앞서 설명했던 네 가지 양상의 ‘됨’들은 모두 해체와 재구성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적응으로서의 됨은 기존의 자기 세계에 대한 해체와 공동체에 대한 순응적 재구성이다. 이것은 백승훈, 노진형(2013)이 묘사한 남자유아교사의 교사됨에서 잘 드러난다. 남성이라는 이질적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치원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남자유아교사들은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p. 60) 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간다.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은 자기 세계에 대한 해체와 공동체의 규범에 회귀하는 발전적 재구성이다. 이는 김대훈(2015)이 설명하는 지리교사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김대훈(2015)의 연구참여자들은 초기에 학습공동체에 참여하며 “위축과 반성, 불안, 걱정”(p. 121)을 경험하지만, 마침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타인을 책임짐으로써의 됨은 자기 세계에 대한 해체와,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재구성이다. 이는 서덕희(2010)에서 나타나는 부모 역할에 대한 한계체험, 그리고 아이의 삶을 온전히 대면하겠다는 자임으로 나타난다.7) 또한 학생과의 대화적 삶을 통해 살아내고 존재하는 교사의 삶에서도 나타난다(박세원, 김윤미, 2010). 탈주로써의 됨은 자기 세계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그에 대한 해체의 반복이다. 이러한 반복의 가치는 무한히 생성, 변이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에 있다(김재춘, 2010). 김성숙, 임부연(2015)의 연구는 이러한 가능성의 일부를 단편적이나마 제시한다. 이러한 됨의 양상을 살펴볼 때,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됨의 다양한 모습은 결국 해체와 재구성의 조합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됨 중에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특징적 됨이 존재한다. 특히 이것은 교사 : 학생, 부모 : 자식, 조모 : 손자 등과 같이 대립항이 있음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들에 대해 더욱 명료하다. 대립항을 통해 새로운 자기 인식으로 나아가는 이러한 종류의 됨은 결국 변증법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조용환(1997)이 말하는 교육의 특징과도 부합된다. 그렇다면 이 변증법을 전진시키는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즉, 교사를 더욱 교사되게 하고, 부모를 더욱 부모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서덕희(2010)는 이를  한없이 연약하고 애절한 존재의 얼굴이 내리는 “명령”, 그리고 레비나스의 말을 빌어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 표현한다. 윤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 명령이 바로 교사를 더욱 교사되게끔 이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교사의 됨에 있어 윤리성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4. 나가며: 미진함에 대해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나는 됨의 다양한 양상을 네 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됨을 관통하는 주제를 ‘해체와 재구성의 조합’, ‘타인과의 관계’로 정리하였다. 더불어 변증법적으로 이해되는 됨에 대하여, 이를 이끌어가는 동기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나는 이를 통해 ‘됨’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교사 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두 가지 미진함이 남아있다. 첫째, 수학교육과의 관계성이다. 내가 탐구한 ‘교사 됨’은 결국 (나보다 어리고 약한) 타인과의 관계, 윤리적 동기에 의해 나타난다. 그런데 수학교육학 내에서의 ‘됨’에 대한 논의는 아직 주로 교사의 지식 획득, 사회화, 발달 단계 등 적응과 정체성 변화로서의 됨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어 있다(Brown & Borko, 1992). 내가 탐구했던 논의들을 어떻게 수학교육의 주제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가 이 보고서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했다. 둘째, 탈주의 됨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들뢰즈-가타리의 ‘- 됨’에 대한 개념은 교사의 됨을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에서 그러한 내용을 충분히 깊게 다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차후의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주제로 삼아 더 깊은 탐구를 진행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경숙, 정미라. (2015). 영‧유아기 자녀를 둔 아버지의 ‘아버지 되어가기’ 미래유아교육학회지, 22(3), 129-158.

김대훈. (2015). 상황학습이론에 근거한 지리교사의 성장과 정체성 형성 과정.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23(3), 115-126.

김성숙, 임부연. (2015). 심미적 수업컨설팅을 통한 유아교사의 존재론적 ‘되어가기(becoming)’의 의미. 유아교육연구, 35(4), 397-424.

김재춘. (2010). Deleuze의 되기‧생성의 교육(학)적 해석. 교육원리연구, 15(1), 1-38.

김창복, 이경순. (2009). 세 초등 교사의 ‘1학년 교사 되어감’에 대한 내러티브 연구. 열린유아교육연구, 14(3), 177-205.

류수진. (2010). 반성적 실천을 통한 연구자로서의 미술교사 되어가기 과정에 관한 체험 연구. 미술교육논총, 24(1). 123-152.

박세원, 김윤미. (2010). 초등학교 교사의 교사됨의 의미 형성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교사는 스스로의 언어로 아동과의 대화적 삶을 이야기하고 살아내는 만큼 존재한다. 교육과정연구, 28(1), 233-259.

백승훈, 노진형. (2013). 남자유아교사의 “교사 되어가기”에 대한 질적 연구. 생태유아교육연구, 12(1), 49-73.

서덕희. (2010). “나를 넘어선다는 것”: 홈스쿨링을 통해 본 ‘부모-되기’의 교육적 의미. 교육철학 41. 121-153.

이남인 (2004). 현상학과 해석학: 후썰의 초월론적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이유나. (2015). 다문화 가정 여성결혼 이민자의 ‘어머니 됨’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육아지원연구, 10(4), 5-31.

정현숙. (2014). 북한이탈여성의 어머니 됨 경험: 남한에서 출산한 30~40대 경산부를 중심으로. 질적연구, 15(2), 130-145.

조용환 (1997). 사회화와 교육. 서울: 교육과학사

Brown, C. A., & Borko, H. (1992). Becoming a mathematics teacher. in D. A. Grouws (Ed.), Handbook of research on mathematics teaching and learning(pp. 209-239). New York: Macmillan.

Shulman, L. S. (1986). Those who understand: knowledge growth in teaching. Educational Research, 15(2), 4-14.



■ 해석학적 순환


#0. 나는 2013년에 휴직을 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복직을 했다. 복직하던 해의 2학기, 나는 내가 한 학기 동안 애들을 ‘반’으로만 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애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인 존재고, 그래서 그들은 개개인으로 보아야만 하는데, 잠시 쉬는 새 애들을 하나하나 보는 눈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교사가 된다는 일이 단순히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1. ‘수학교사 됨’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수학교육 쪽에서 becoming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우리 연구커뮤니티에서는 이를 교사지식, 사회화, 정체성 형성, 발달이론 등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0에서 말한 나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이런 연구들에 어딘가 결여된 부분이 있다고 여기면서도, 구체적으로 그걸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수학교육 안에서 말할 수나 있는 건지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2. 중간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됨’에 대한 논의를 찾아가니, 의외로 ‘됨’을 다루는 연구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연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서덕희(2010)의 논문이나 박세원, 김윤미(2010)의 논문이 그랬다. 이 논문들은 애들 가르치던 시절이 생각나 읽으면서 무척 짠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됨’은, 특히 교사의 됨은 학생과의 이항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연구커뮤니티의 맥락 속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당장 나조차도 교사의 ‘됨’을 교사의 성장, 발달 이런 단어들과 관계지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3. 이제 두 가지 고민이 생긴다. 첫째는 내가 찾은 ‘됨’의 본질이 정말 저런 관계성 속에서 탐구되는 것이라면, 이걸 어떻게 수학교육의 논의 속으로 가져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됨’에 대한 고민이 아직 수학 특화된 것으로, 전공자의 고민으로 발전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들뢰즈-가타리의 ‘-됨’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고민이라기보단 내 연구에 써보고 싶은 욕심인 것 같다). 들뢰즈-가타리의 ‘-됨’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선에선 문적 이해의 지속적인 해체이다. 그렇기에 ‘–됨’을 소수자 되기라 하는 것이고, 기관없는 신체로 돌아가는 일이라 할 것이다. 뭔가 이런 논의들이 수학교사의 전문성 발달, (반복되는) 수업 속에서의 교사의 성장을 설명하는 좋은 틀이 될 것 같은데, 아직 이게 구체적으로 보이질 않는다(보이면 졸업을 했을 것이다). 학기말 보고서를 어떻게 구성할지 대략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1) 청주교대에서 개최된 제 18회 매스 페스티벌(MF)을 말한다. 전국수학교사모임에서는 매년 3박4일의 대형 연수를 연다. 보통 400명 내외의 인원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기말 보고서에서는 이를 ‘수학교사 됨’과 연결짓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다.

3) 이 맥락에서 사용하는 직접인용(“ ”)은 문장의 생생함을 위해 각 참고문헌 속에서 제시된 에믹한 용어를 따온 것이다. 구체적인 쪽수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읽기의 편의를 위한 것임을 밝힌다. 

4) 사랑을 통해 개인이 완성되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어떻게 ‘됨’과 관계 맺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오해를 막기 위해 각주를 붙인다. 심미적인 방법으로 수업을 컨설팅하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 수업’에 대한 컨설팅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다. 심미적 수업이란 미학적 주제를 다루는 수업을 말한다.

6) 물론, 연구에 제시된 탈주의 개념이 감각적인 부분에만 집중되어 나타나 들뢰즈의 ‘탈주’를 피상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7) “누군가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배움의 길을 시작하기로 자임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서덕희, 2010: 143)



Posted by Oh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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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eastmode 2016.12.26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물리교사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의 노력과 성장을 항상 응원합니다!

    • Oh 선생 2016.12.27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학생이 사범대생인지 중고등학생인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선생이 화려한 길은 아닌데, 어려운 선택 해줘서 고맙습니다. 꺾이지 말기를...

  2. 김경현 2017.04.08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 않은 글을 어렵게 쓰시느라..뭐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내가 쉬워야 남에게도 쉽습니다
    그 열정으로 꼭 필요한 일 하셨으면 합니다

    • Oh 선생 2017.04.09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렵지 않은 글을 어렵게 쓰는건 보통 본인 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내공이 모자랄 때 나타나는 현상일텐데, 제가 아직 내공이 모자라지 싶습니다. 공부해서 더 나은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3. 사막한가운데 2018.08.02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조용환 교수님 강의 듣기 전보다 잘 읽히고 재미있어요 ㅎㅎ 아는만큼 보이는 걸까요!

    우리 커뮤니티에서도 확실히 "관계"를 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